희망은 카프카의 K처럼
장 석 주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
연체료가 붙어서 날아드는 체납이자 독촉장처럼
절망은
물빠진 뻘밭 위에 드러누워
아무것도 보고싶지 않아 감은 눈 앞에
환히 떠오르는 현실의 확실성으로 온다.
절망은 어둑한 방에서
무릎사이에 머리를 묻고
서랍을 열어 서랍 속의 잡동사니를 뒤집어 털어내듯이
한없이 비운 머릿속으로
다시 잘 알 수 없는 아버지와 두 사람의 냉냉한 침묵과
옛날의 病에 대한 희미한 기억처럼
희미하고 불투명하게 와서 빈 머릿속에 불을 켠다.
실업의 아버지가 지키는 썰렁한 소매가게
빈약한 물건들을
건방지게 무심한 눈길로 내려다보는 백열전구처럼.
핏줄을 열어, 피를 쏟고
빈 핏줄에 도는 박하향처럼 환한
현기증으로,
환멸로,
굶은 저녁 밥냄새로,
뭉크 畵集의 움직임 없는 여자처럼
카프카의 K처럼
와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의 주인을
달래서, 살고 싶게 만드는
절망은,
예전 스치며 읽던 이 시가 오늘 밤 자꾸만 내 마음 속에 맴돌며 떠나지를 않는다.
희망은 언제 오는가!
시인은 말한다.
"희망은 절망이 깊어 더 이상
절망할 필요가 없을 때 온다."고.
그래서 인간은 살아갈 수 있는가보다.
절망의 맨 끝에서, 죽고 싶을 만큼 절망할 때
어두운 가슴 깊은 곳에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불빛 한 점 발견하게 되는 것은...
살.아.야.하.므.로.
그 확실하고 절절한 전제앞에서 먼저 해야할 일은 어떻게든 희망을 만드는 일.
절망은 늘 그렇게 희망을 데려온다.
그래서 다시 살아갈 수가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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