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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필요한 것은 시간에 향기를 되돌려 주는 시간 혁명... / <시간의 향기>중에서

kiku929 2014. 8. 27. 09:45

 

 

 

                                                          인간의 시간은 땅과 멀어지면서 중력을 잃게 된 것인지도......

 

 

 

 

 

 

오늘의 시간에는 질서를 부여하는 리듬이 없다. 그래서 시간은 혼란에 빠진다. 반시간성으로 인해 시간은 어지럽게 날아가 버린다.

삶이 가속화된다는 느낌은 실제로는 방향없이 날아가 버리는 시간에서 오는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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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분산은 지속의 경험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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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적 삶이 절대화되면서 노동은 절대적 명령이 되고 인간은 일하는 동물animal laborans로 전락하고 만다.

활동의 과잉이 일상을 지배하면서 인간의 삶에서 사색적 요소, 머무름의 능력은 완전히 실종되고 만다.

그 결과는 세계의 상실, 시간의 상실이다.

이른바 느리게 살기 전략으로는 이러한 시간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그런 전략은 심지어 본질적인 문제를 은폐하기까지 한다.

필요한 것은 사색적 삶을 되살리는 일이다. 시간 위기는 위기에 봉착한 활동적 삶이 사색적 삶을 다시 자기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에

비로소 극복될 것이다.

 

*<시간의 향기>중에서 /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13)

 

 

 

 

<시간의 향기>는 저자 한병철의 <피로사회>이전에 나온 것이지만 우리나라엔 <피로사회>, <시간의 향기>, <투명 사회>순으로 소개 되었다.

여기서 시간의 향기란 사색적 삶을 일컫는다고 할 수도 있겠다.

 

역자의 작품 해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사색적 삶'이란 행위를 통해 세계와 시간을 조작하고 변화시키는 활동적 삶의 대척점에 있는 삶이다.

(중략) 그것은 어쩌면 기다림에 대한 감각을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를테면 열매를 숙성시키기 위해 천천히 나아가는 자연의 시간을 유전자 조작을 통해 단축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아름다운 흐름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을 기를 것, 이것이 바로 한병철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현대의 사람은 바빠야 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리는 것만 같다.

뭔가 무료하게 할 일이 없이 지내는 일에는 일말의 죄의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바쁨'이 돈과 직결될 때 최고의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나 역시 결혼하고 가정주부로서 살아왔지만 아이 셋을 키우면서 집안일을 한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가정주부에겐 '직장을 나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과되는 일이 꽤 있기 때문이다.

직장을 다니는 여자들이 일하는 가정의 일과는 차원이 다른 범위인 것이다.

하지만 가정주부가 자기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당당하기란 쉽지 않다. 왜냐하면 그 일은 바로 돈으로 치환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나름대로 나의 삶, 즉 내 시간의 정원을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예술적 향유를 구하고자 무료강좌를 찾아 그림이라도 배우러 다니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한 마디로  '팔자 좋은 여자'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은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가 요구하고 그 속의 대중이 추구하는 가치도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러나 활동적인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흩어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매달아두는 일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자는 현대의 시간은 점점 원자화 되어가고 그래서 시간은 한없이 가벼워져서  방향조차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휘발성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 휘발성의 시간들에서 의미를 기대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의미란 숙성되는 시간에서 생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유한한 삶에서 진실로 의미있는 것이 존재하는가, 라는 물음을 던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모두 날아가버린 텅 빈 공허감보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흐름속에서 한 편의 서사적 삶을 완결시키려 노력하며 걸어가는 삶 자체를 '의미'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람은 저마다 한 권의 소설이 된다는 그 말은, 바꾸어 말해 인생이란 그래야 한다는 말이 되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