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사진에서는 모든 부정성이 제거된다.
디지털 사진은 암실도 현상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사진이 되기 이전의 원판, 즉 네거티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디지털 사진은 순수한 포지티브이다. 생성, 노쇠, 죽음은 지워진다.
"사진은 단지 (쉽게 바스러지는)종이하고만 운명을 함께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이 더 견고한 물질 위에 찍힌다 하더라도 사멸의 가능성은 줄어들지 않는다.
마치 살아 있는 유기체처럼 사진은 작은 은가루의 싹에서 태어나 한순간 꽃피었다가 곧 늙어가기 시작한다.
빛과 습기에 공격당한 사진은 색이 바래고, 소진되고, 사라진다"
롤랑바르트에게서 사진은 시간의 부정성을 본질적 구성 요소로 하는 생의 형식과 결부된다.
하지만 이 경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진의 기술적 조건, 즉 아날로그적 성격 때문이다.
디지털 사진은 전혀 다른 생의 형식, 점점 더 부정성에서 벗어나는 생의 형식에 부합한다.
그것은 탄생도 죽음도 없는, 운명도 사건도 없는 투명한 사진이다.
운명은 투명하지 않다. 투명한 사진은 의미론적, 시간적 응축을 알지 못한다. 그러한 사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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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트에게 날짜는 사진의 일부이다.
"왜냐하면 날짜는 삶, 죽음, 세대의 불가피한 소멸을 환기하고 다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날짜는 사진에 죽음과 무상성을 기입한다.
*<투명사회> 중에서 p30 / 한병철 지음, 김태환 옮김 / 문학과 지성사 (2014)
사진찍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큰딸에게 보여주고 싶은 글...
큰 딸은 필름 카메라를 좋아한다. 필름만의 질감이 좋아서라고...
디지털 사진과 달리 필름 사진에는 시간이 있고 온도가 있다.
그래서 색바랜 필름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아련해진다.
사진을 보는 일만큼 세월을 실감할 때가 또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사진 속에는 건너온 세월의 깊이가 담겨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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