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풍경

대천역에서...

kiku929 2014. 10. 1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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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산소를 다녀온 후 언니는 먼저 올라가고

나는 남편과 점심을 먹은 후 오후 기차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

기차를 탈 때면 언제나 내 마음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인다.

평온하고 쓸쓸하고 슬프고 그립고 후회스러운... 그러나 결코 어둡지 않은 감정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을 바라볼 때의 기분이랄까...

 

 

 

기차역이 이전한 탓에 내가 어렸을 때 기억하는 대천역은 아니다.

하지만 역이라는 느낌은 공간이 달라졌다해도 그대로인듯 싶다.

 

 

 

 

 

 

 

 

플랫홈에서 바라본 풍경...

 

 

해가 기울어간다.

저 해를 따라 하루도 함께 저문다.

 

안녕...

 

 

 

사진을 정리하다가 아주 예전에 쓴 <아버지와 대천역>이라는 글이 생각이 났다.

따로 저장해두지 않아서 한참을 뒤져서 겨우 찾아냈다.

둘째의 학교 숙제였던 가족 신문에 올린 것인데 나중에 학교 문고에 실리기도 했다.

국어 선생님께서 이 글을 보고 눈물이 났다는... ^^;;

 

 

 

 

 

 

 

아버지와 대천역

 


요즘 들어 내겐 새로운 기쁨하나 생겼는데 그건 한달에 한두번 기차를 탈수 있는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차에 오르면 난 기차와 함께  과거의 시간으로  떠나곤 한다.
어둑해진 대천역에는 아빠 엄마와 함께 내가  외지로 떠난 형제들을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고
항상 연착을 하곤 했던 기차가 도착하면 멀리서 우리 형제들이 기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찾느라 이리저리 고개를 내밀며 반가운 얼굴을 찾아내곤 했던 그 시절...

이렇게 우리 가족의 재회와 이별은 모두 대천역에서 시작되었다.
6형제가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지에 나가있었던 탓에

우리집은 주말이면 기차역으로 마중나가거나 배웅하는 일이 일상처럼 되어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마저 떠나게 된 후, 

고향에는 아빠 엄마만이 남아 기차역에서  항상 나를 기다려주고 배웅해주었다.

우리 형제들에게 대천역은 추억의 보금자리이며 행복했던 시간의 상징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풍경이며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픈 아름다운 시간을 제공해준  장소....

그리고 그 기차역에는 아빠가 있었다.
내게 아빠의 모습이 가장 강하게 남아있는 장소가 된 것은 
아빠의 끔찍한 자식사랑이 넘치게 표현되었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자식들이 서 가면 힘들다고 일요일 새벽에 등산을 다녀오시면서 한시간 가까이 줄을 서서 표를 구해다 준 아빠...
떠날 때는 입장권을 끊어서 플랫홈까지 나오시고는 기차가 도착하면 열차에 함께 올라 자리 잡아주고
짐을 선반위까지 올려다준 다음에야 황급히 내려가시던 아빠,
그리고는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계속 그 자리에서 손을 흔들어주시던....

그때 난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배웅해주는 것도 마중나와주는 것도...
그리고 영원히 아빠가 그 자리에서 항상 손을 흔들어 줄줄만 알았다.


그런 아빠가 돌아가시고 내가 처음 대천역에 도착했을 때 난 아빠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그때야 비로소  실감하게 되었다.
가슴의 훵한 구멍으로 찬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빠의 존재를 기차역에서 확인했다면 아빠의 부재도 기차역에서  확인하게 된 것이다.

노희경 작가가 쓴 <꽃보다 아름다워>란 드라마에 이런 나레이션이 나온다.

........훗날 미수가 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입맞추고, 포옹하고, 데이트하는 즐거움도 컸지만,
엄마와 형제들과 신나게 장난치며 웃고 떠들던 그 즐거움도 참으로 큰 것이었다고.
재수도 나도 그렇다고 했다.  .............

정말 그렇다.
내가 좀더 젊었을때는 남녀간의 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마냥 여긴 적이 있었지만 
나이 든 지금은 어릴 적 형제와 부모와 함께 했던 그 시간이 정말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 것을...
지금 내게 소원 하나 말하라고 한다면 그 예전에 아빠 엄마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함께 했던 그 행복했던 하루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리라.

그건 너무 억지스런  소원이란 걸 안다..
하지만 난 요즘  혼자서 그 시간으로 떠나는 법을 알게 되었다.

기차에서의 시간 동안 나는 내가 그토록 바라던 시절의 문을 열고 들어가 결코 사라질 수 없는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조우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천역에 발을 내디딜 때 예전처럼 쓸쓸하지가 않다.

이번 대천에 내려갈 때에는 부모님 산소를 다녀와야겠다.
지금쯤 산소에는 엄마가 생전에 가꾸어 놓은 철쭉이며 등꽃이며 꽃들이 곱게 피어있을거고
잔디는 초록빛으로 아빠 엄마의 무덤을 보드랍게 감싸주고 있겠지...
그리고 그 앞에서 생전에 자주 말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말, 미안하다는 말을 수없이 질리도록 말하리라...

아빠 엄마! 사랑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2004년  5월  3일

 

 

 

 

얼마 전,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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