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사에서 가장 끔찍한 명화를 뽑는다면? 아마 이 그림이 1위가 되지 않을까. 사실감 넘치는 `살인의 순간'에 절로 오싹해진다. 한 여자는 침대 위에서 발버둥 치는 남자를 꼼짝 못하게 붙들고 있고, 또 한 여자는 남자 머리를 붙잡아 목을 쓱쓱 베고 있다. 칼이 이미 목의 절반을 지나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기 일보직전이다. 그림 속 여자를 보면 살인은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작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목을 베는 여자는 칼질을 하면서 몸을 뒤로 빼고 있는데, 끔찍해서가 아니라 피 튀는게 싫어서인 것이 틀림없다. 팔 소매를 이미 걷어부친 것이 그런 사실을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듀엣으로 목을 따고 있다는 것이 이미 이 두 여자가 의도된 킬러임을 알려준다. 저 그림속 살인하는 여자 이름은 유디트다. 유디트에게 목이 잘리는 남자는 홀로페르네스. 홀로페르네스는 이스라엘에 쳐들어간 앗시리아의 장수였다. 유대 여자 유디트는 하녀와 함께 적장 홀로페르네스를 찾아가 이스라엘을 함락시킬 묘책을 들려주겠다며 유혹해 그를 헬렐레하게 만들고는 잠이 들자 목을 뎅강 잘랐다. 당연히 그녀는 유대의 영웅이 됐다. 그래서 구약성경에 당당하게 이름이 올랐다. 성경 내용이므로 그림이 저리 끔찍해도 용서가 될 뿐만 아니라 높은 평가를 받고 지금까지 명화로 꼽히고 있다. 기술적 면에서도 생생한 장면을 연출해낸 작가의 공력이 대단한 그림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여성들에겐 지옥이 열린다. 병사들은 야수가 되고 여성들은 희생양이 된다. 어느 전쟁에서나 마찬가지다. 고대 전쟁에서나 그랬다고? 유고 내전을 보라. 자기 민족의 씨를 늘리겠다고 다른 나라 여자들을 가둬놓고 집단 강간을 해댔다. 전쟁 그 자체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등장한 이래 가장 이성화되고 계몽되었다는 현대인 20세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전쟁이 벌어졌고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다. 전쟁은 결코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닐 뿐만 아니라 남의 나라 이야기도 아니다. 한국은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휴전국가다. 좌우지간 이 지옥이 되는 전쟁기에는 가끔 여성 영웅이 등장한다. 중국에는 아예 전장에 나선 여자도 있었다. 화무란이란 중국 발음보다는 `뮬란'이란 영어식 발음으로 더 유명하지만. 그러나 이 뮬란이나 잔다르크같은 좀 지나치게 특별한 캐릭터들은 예외로 하자.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여성이 영웅이 되는 경우는 유디트처럼 성욕을 이용해 적장을 저격하는 팜므 파탈형들이다. 동서고금 여성이 영웅이 되는 공통적인 스토리라인이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여성이 있었을까? 우리나라에서도 전쟁이 벌어졌으므로 당연히 이런 여성 영웅이 있었다. 그 이름은 계월향. 이름에서 이미 느낌이 전해졌겠지만 일반적인 여성이 아니라 기생이었다. 영웅이 된 기생. 그래서 `의기(義妓) 계월향'이다. 임진왜란이 낳은 거의 유일한 여성영웅이다. 계월향은 평양 기생으로 평안도 병마절도사 김응서의 애첩이었다. 왜군이 쳐들어 오고 평양성은 함락된다. 계월향은 적장의 수청 을 들어 잠을 재운 뒤 김응서가 적장의 목을 베게 하고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여성이고, 또 기생이어서 이 이야기는 훗날 민중들에게 사랑받는 조선시대 인기 이야기 레퍼토리가 된다. 우리 고전 소설 <임진록>에 이 이야기에 민중 상상력이 더해져 아예 소설로 만들어져 실렸다. 대충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계월향이 평양성이 함락되자 연광정에서 왜장의 수청을 들면서 물긷는 노인에게 몰래 편지를 김응서 장군에게 전한다. 김응서는 변장해서 왜군 눈을 피해 연광정으로 들어가고, 계월향은 애교로 적장을 녹여 술을 퍼먹여 잠들게 한다. 김응서는 잠든 적장의 목을 베어 들고 계월향을 데리고 말을 타고 탈출한다. 그런데 성을 뛰어넘어야 하는데 말이 높이 뛰지 못해 위기에 빠진다. 계월향은 이때 "나리 손에 죽는게 깨끗하니 저를 죽여주소서"라고 간청한다. 장군은 눈물을 머금고 계월향을 칼로 벤 뒤 간신히 탈출에 성공한다는, 그런 이야기다. 일단 계월향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지는데, 이 계월향을 그린 그림이 있다. 사실주의 사조가 지배하던 시기 그림이 아니란 점을 감안하시길.
저 끔찍한 유디트 그림을 그린 작가는 여성이었다. 남자들만 그림을 그리던 서양미술사에서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하는 여성 화가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1593~1652)다. 젠틸레스키 이전에도 유디트 이야기는 성경 그림의 인기 소재였다. 그러나 젠틸레스키의 그림과는 달랐다. 남성 화가들이 그린 유디트는 예쁘고 관능적인 모습, 아니면 종교적 미감으로 표백한 성녀의 이미지였다. `여성'이란 의식이 확고했던 시대를 앞선 여성 젠틸레스키는 강한 유디트를 새롭게 창조했다. 새로운 유디트의 모델은 바로 그 자신이었다. 젠틸레스키가 당시 여성으로서는 선구적으로 화가가 되었던 것은 지독하게도 어려운 난관과 굴레를 극복한 결과였다. 화가의 딸이었던 젠틸레스키는 어린 시절 일찌감치 그림에 재능을 보인다. 아버지의 친구인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는데, 이 스승이 문제였다. 친구의 어린 딸을 덮쳤던 것이다. 결국 이 짐승같은 스승은 고소를 당했다. 그러나 이게 오히려 더욱 젠틸레스키에게 상처를 입혔다. 사람들은 오히려 젠틸레스키키가 음란해서 유혹한 것이 아니냐고 그녀를 공격했다. 젠틸레스키는 이런 시련 속에서 예술가로 자신을 키워냈다. 남자만이 화가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 그는 온갖 편견에 맞서 싸우는 전사가 되지 앟을 수 없었다. 그런 자의식을 담아 그린 자화상이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