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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 박경리

kiku929 2015. 10. 23. 09:53

 

 

 

 

 

 

문학을 지망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잘 곳, 그것들입니다…… 광목 한 필로 나는 열 벌 가량의 옷을 만들었습니다. 겨울에는 광목 옷을 입지 못하지만, 어디 열 벌의 옷을 일 년 내에 다 입고 버리겠어요? 먹는 것만 해도 그래요. 나는 혼자 있기 때문에 쌀과 잡곡 한 줌씩이면 밥을 지어먹을 수가 있지요. 텃밭에는 겨울을 빼고 푸성귀가 늘 있으니, 기본적인 간장, 된장, 고추장만 있으면 식사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문제는 기본적인 것만으로 생활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다는 것은 내게 상당한 용기를 주었습니다…… 내가 용기를 얻었다는 것은 굽히고 살지 않아도 된다. 바로 그 점 때문이었습니다……

                                                                                                                                                             박경리

 

 

 

 

 

 

 

*

 

부모님이 생전에 계실때에는 기댈 곳이 있었다.

친정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지만 시댁은 작은 쌀농사를 지었고 우리는 쌀을 사먹지 않아도 되었다.

김장김치는 물론이고 수시로 김치를 갖다 주셨다.

나는 물건에 욕심이 많은 편이 아니어서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는 것으로도 오랜 기간 버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최후에는 시댁이든 어디든 방 한 칸 빌려 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 사실이 내게 용기를 주었던 적이 있다.

한동안 돈이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은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위안이었다.

그런데 친정 부모님은 이제 모두 돌아가시고 시댁 역시 혼자 남은 아버님마저 병세가 짙어져 입원해 계신다.

가장 막바지에서 땅이 딸린 집이 있다는 것, 그것은 기본적인 생활이 우선은 보장되는 일이다.

생각해보면 도시에서의 삶이 뭔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실뿌리 몇가닥으로 살고 있는 삶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땅이 없는 삶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땅이 없으면 기본적인 것을 모두 돈으로 사야하는데 돈을 버는 일이란 재산이 아주 많은 사람을 예외로 하면

일정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이상의 불행한 일이 겹쳤을 때, 예를 들면 가장이 아프거나 거기에 다른 누가 사고를 당하거나 하는,

그런 일을 감당할 만한 가정은 그리 많지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땅은 최소한의 식량을 보장해준다. 그것이 얼마나 든든한 것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것이 어쩌면 삶에 있어 가장 큰 용기와 위로가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