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메리제인 요코하마 / 황병승

kiku929 2015. 10. 24. 10:22

 

 

 

 

메리제인 요코하마

 

 

황병승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꿔 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요코하마

 

 

-황병승,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 2005)

 

 

 

 

 

*

묘한 슬픔이 여운으로 남는시...

'메리제인'이라는 말도 ' 요코하마'란 말도...

어떤 뚜렷한 의미가 없다고 할지라도 말에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어감이나 리듬같은 것이 있는데 이 두 단어는 슬픈 파동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그 아득함의 거리,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은 이 거리로 인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면 더 외로워지는,

외로움이 극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 속에서 떠오르는 스치로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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