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일찍이 나는 / 최승자

kiku929 2015. 10. 23. 10:12

 

 

 

 

  일찍이 나는

 

 

  최승자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찍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

최승자 시인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았다."

 

난 왜 이 구절에서는 눈물이 나오려 하는걸까.

창밖을 내다볼때나, 어느 거리를 걷고 있을 때나, 누구와 만나 차를 마실 때나,

문득문득 나는 내가 허상처럼 느껴지곤 한다.

내가 지나온 시간도 또 지금 이 시간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시간도...

루머 속에서 살다갈 것만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