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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가지를 치다 / 고영민

kiku929 2015. 10. 22. 09:25

 

 

 

 

 

 

 

꽃모가지를 치다

 

 

고영민

 

 

 

목백일홍이 활짝 피었다

 

피어 달리는 붉은 안장에 앉아
한나절 벌 나비는
어디를 가는가

 

꽃의 채찍이여
해를 얹고 구름과 빗방울을 얹고
천진한 얼굴 하나를 앉혀
꽃은 달린다

 

천관의 집 앞에 말(馬)이
제 주인의 사랑을 내려놓듯
꽃이 앞질러
멋모르고 나를 내려놓을
마음 아픈 곳

 

사랑은 꽃 속에서 출렁인다
질끈 입술을 물고
칼을 뽑아 붉은 꽃모가지를 쳐야 할
내 안의
읍참마속(泣斬馬謖)은

 

 

*계관웹북, 2015년 가을 호

 

 

 

 

*

김유신이 사랑한 기생 '천관'

그러나  입신양명을 위해 김유신이 천관과 헤어진 어느날,

술에 취해 말 등에서 잠이 든 유신을 말이 천관의 집으로 데려가자

유신이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

 

 

내가 이용하는 지하철 노선은 거의가 계양행이다.

그런데 어쩌다 한 번 그 반대의 노선을 타야할 때가 생기는데 나도 모르게

계양행 방면으로 표를 끊고 나가는 일이 번번하다.

시간을 맞춰 나갔는데 제 시간에 전철이 오지 않으면 그때서야 아차, 한다.

내 마음에도 유신의 말이 살아 있는 것이다.

 

집을 나서기 전, 몇번씩 나를 상기시키지만 막상 지하철 역에 가면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반대 행에서 태연히 기다리고 있는 나...

내가 베어야할 것은 어쩌면 세월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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