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루머처럼, 유머처럼 / 박해성

kiku929 2015. 10. 26. 10:05

 

 

 

 

 

 

 

   루머처럼, 유머처럼

               - 건망증

 

 

 

   박해성

 

 

 

   안개 낀 하루를 연다, 루머처럼 유머처럼

 

   지갑보다 더 헐렁한 정신을 챙겨들고 무얼 사러 왔더라? 상가 앞을 서성인다

뇌리 속 미립자들이 시끄럽게 뒤엉키고 주둥이와 똥구멍뿐인 확신은 물컹해서

어라, 어디가 머리이고 어디가 꼬리인가 자꾸만 더듬은 동안 애벌레와 나비 사이

성 금요일이 지나가고 토요일엔 잠에서 깨어나는 걸 잊어버려 못 일어나면 어쩌나

젖은 날개 접은 채로 마냥 자면 어쩌나, 어쩌나 내가 나마저 몰라보면 난 어쩌나

부활절의 유전저가 아예 삭제되면 또 어쩌나 쓸쓸하다 헛헛하다 맵고 짜게 먹어볼까,

턱없는 긍정이라도 믿고 싶은 이 시간 빈집에 꽂힌 부고처럼 빛바랜 낮달을 이고

어제 떠난 바람의 발자국을 쫓다보니

 

   하늘과 나의 거리가 한발 더 가까워진 듯

 

 

*시집 <루머처럼, 유머처럼>/ 박해성

 

 

 

 

시인의 말

 

말씀言으로 지은 절寺을 찾아 나섰다.

이룬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몸

갈 길은 아득한데 어느덧 황혼이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영혼의 심지를 돋워야겠다.

 

요즘은 하늘에서 별을 방목하시는 나의 아버지, 박치운님께

두 번째 시집을 바칩니다.

 

2015년 가을  박해성

 

 

 

201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부문 당선,

2012년 ' 천강문학상'시조 부문 대상을 수상하였으며,

2015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을 수혜했다.

시집으로 <비빕밥에 관한 미시적 계보>가 있다.

 

 

 

 

 

*

일 년여 동안 도서관에서 근무했을 당시 도서관 강좌였던 시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강사님이 박해성 선생님이었다.

열심히 듣지는 못했지만 내게 처음 시라는 것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신 분이다.

연세가 제법 지긋하심에도 열정만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선생님,

시 외에도 사진을 찍으시고 그림을 그리신다.

오늘은 안부라도 전해드려야겠다.

시집 출간을 축하드린다는 말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