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제인 요코하마
황병승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꿔 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요코하마
-황병승,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랜덤하우스, 2005)
*
묘한 슬픔이 여운으로 남는시...
'메리제인'이라는 말도 ' 요코하마'란 말도...
어떤 뚜렷한 의미가 없다고 할지라도 말에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어감이나 리듬같은 것이 있는데 이 두 단어는 슬픈 파동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그 아득함의 거리,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은 이 거리로 인해 좌절하고 절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랑하면 더 외로워지는,
외로움이 극명하게 인식하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 속에서 떠오르는 스치로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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