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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위 속에서 나무들은...../김훈 장편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중에서

kiku929 2015. 10. 27. 22:22

 

 

 

 

 

  추위 속에서 나무들은 우뚝하고 강건했다. 나무들은 추위와 더불어 자족해서, 봄을 기다리는 것 같지 않았다.

눈덮인 숲에 한낮의 햇볕이 내리면 숲은 부풀어 보였다. 우수가 지나자 숲 위로 서리는 뿌연 기운이 짙어졌다.

숲의 봄은 언 땅 밑에 숨어 있다가 나무뿌리로 스며들고 나무기둥을 타고 올라가서 공중으로 발산되었다.

숲의 봄은 나무가 뿜어내는 신생의 시간이었다. 부푸는 땅의 들숨과 날숨이 나무의 입김에 실려서 온 산에 자욱

했고 봄으로 뻗어가는 나무는 새로운 시간의 냄새와 빛깔까지도 뿜어냈다.

 

 

- 김훈 장편 소설 <내 젊은 날의 숲>중에서  p92 / 문학동네,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