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 송찬호

kiku929 2016. 1. 11. 10:38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송찬호

 

 

장지의 사람들이 땅을 열고 그를 봉해 버린다 간단한

외과 수술처럼 여기 그가 잠들다

가끔씩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그곳에 심겨진 비명을 읽고 간다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단단한 장미의 외곽을 두드려 깨는 은은한 포성의 향기와

냉장고 속 냉동된 각 진 고깃덩어리의 식은 욕망과

망각을 빨아들이는 사각의 검은 잉크병과

책을 지우는 사각의 고무지우개들

 

오래 구르던 둥근 바퀴가 사각의 바퀴로 멈추어 서듯

죽음은 삶의 형식을 완성하는 것이다

미래를 예언하듯 그의 땅에 꽃을 던진다

미래는 죽었다 산 자들은 결코 미래에 도달할 수 없다

그러나 산다는 것은 얼마나 찬란한 한계인가

그 완성을 위하여

세계를 죽일 수 없음을 알면서도 날마다 살인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은

폐허 속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송찬호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 민음사.1989

 

 

 

 

 

*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이 한 문장만으로 철학적 사유를 확장시켜준다.

멈춘다는 것은 더 이상 둥글지 않다는 것,

욕망과 한때의 영광과 지성과 망각.... 그 모든 것은 사각의 흙 속에서 잠든다.

 

종내는 이렇게 끝나고 마는 것이 삶의 한계이자 완성이겠지만

살아 있다는 것은 도달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도전이며

그러므로 삶은 찬란하다고,

그 자체로 완성이라고 이 시는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