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봄날 / 이성복

kiku929 2016. 3. 20. 09:32







봄날



이성복




누가 브래지어를 벗긴 것도

누가 브래지어를 숨긴 것도 아닌

공단 옆 연둣빛 젖무덤 올망졸망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옮아가며

나른히 몸 뒤채는 젖무덤들

이쪽에서 누르면 저쪽으로

삐져나올 것 같은 젖무덤들

고운 먼지 머금은 봄바람은

수줍어 조심조심 쓰다듬어보다가

기어코 올라타서 성급하게 몸 구른다

말라 비틀어진 작년 갈대들이

목쉬도록 타일러도 소용없는 일이다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문학과지성사, 2005.

 





이 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너무 야하다고 한다.

이상하지?

나는 야하다는 느낌보다

언어가 이렇게도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운데...

무표정한 단어들이 시인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어 금방이라도

한 생명이 잉태될 것만 같은....


봄날이다.

정말로 봄날...

천지에 가득한 이 꿈틀거림이 봄햇살에 꿈결처럼 느껴진다.

다시 봄날인데

난 이 봄날 무엇에 마음이 기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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