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
이성복
누가 브래지어를 벗긴 것도
누가 브래지어를 숨긴 것도 아닌
공단 옆 연둣빛 젖무덤 올망졸망
연둣빛에서 초록빛으로 옮아가며
나른히 몸 뒤채는 젖무덤들
이쪽에서 누르면 저쪽으로
삐져나올 것 같은 젖무덤들
고운 먼지 머금은 봄바람은
수줍어 조심조심 쓰다듬어보다가
기어코 올라타서 성급하게 몸 구른다
말라 비틀어진 작년 갈대들이
목쉬도록 타일러도 소용없는 일이다
[호랑가시나무의 기억],문학과지성사, 2005.
이 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니 너무 야하다고 한다. 이상하지? 나는 야하다는 느낌보다 언어가 이렇게도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운데... 무표정한 단어들이 시인의 손끝에서 생명을 얻어 금방이라도 한 생명이 잉태될 것만 같은.... 봄날이다. 정말로 봄날... 천지에 가득한 이 꿈틀거림이 봄햇살에 꿈결처럼 느껴진다. 다시 봄날인데 난 이 봄날 무엇에 마음이 기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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