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형지에서
송승언
해변에 버려졌다
알 수 없는 해변이었다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알 수 없는 바다 생물의 사체와
파도에 깎여나가는 돌의 먼지들이
빛나고 있었다
먼 곳에서는 하나의 빛살로 보일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눈이 내리고 배가 고프고
밤이 오고 잠도 오는데 인가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이 해변만 밤을 밝혔다
할 수 없이 바다 생물의 사체도 주워 먹고
모래 굴속에서 잠도 잤는데
파도 소리가 먼 땅까지 나를 데려다주었고
알 수 없는 해변으로 다시 데려다 놓았다
살았다가
죽는 것처럼
죽게 되고
살게 되듯이
깨지 않고 싶었지만 나는 깨었고
알 수 없을 해변이 빛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눈이 날리고 눈이 쌓이고
날리는 눈 사이에 흰 새가 뒤섞여 날고
회전하는 겨울 속에서 머리카락은 점점 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모든 게 흰빛으로 망각되는 해변에서
미처 찍지 못한 흑점처럼
얼어붙고 , 녹아내리는 먼 바다
파도에 밀려오는 뿌연 빛 사이로
내가 삼켰던 생물이 헤엄쳐 오고 있었다
없는 다리와
없는 입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형상으로 울면서
피는 파도와 섞인다
살은 먼지에 덮인다
이곳에 나를 버린 게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탈출을
꿈꾸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멈추면
완성되지 못하는 침묵이 굴속에서 울었다
-송승언 시집『철과 오크』 / 문학과 지성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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