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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지에서 / 송승언

kiku929 2016. 3. 16. 00:32







유형지에서


송승언



해변에 버려졌다

알 수 없는 해변이었다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알 수 없는 바다 생물의 사체와

파도에 깎여나가는 돌의 먼지들이

빛나고 있었다

먼 곳에서는 하나의 빛살로 보일 것만 같은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눈이 내리고 배가 고프고

밤이 오고 잠도 오는데 인가는 보이지 않고

알 수 없이 해변만 밤을 밝혔다


할 수 없이 바다 생물의 사체도 주워 먹고

모래 굴속에서 잠도 잤는데


파도 소리가 먼 땅까지 나를 데려다주었고

알 수 없는 해변으로 다시 데려다 놓았다


살았다가

죽는 것처럼

죽게 되고

살게 되듯이


깨지 않고 싶었지만 나는 깨었고

알 수 없을 해변이 빛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눈이 날리고 눈이 쌓이고

날리는 눈 사이에 흰 새가 뒤섞여 날고

회전하는 겨울 속에서 머리카락은 점점 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

모든 게 흰빛으로 망각되는 해변에서

미처 찍지 못한 흑점처럼


얼어붙고 , 녹아내리는 먼 바다

파도에 밀려오는 뿌연 빛 사이로

내가 삼켰던 생물이 헤엄쳐 오고 있었다

없는 다리와

없는 입으로

도무지 알 수 없는 형상으로 울면서


피는 파도와 섞인다

살은 먼지에 덮인다


이곳에 나를 버린 게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았다 탈출을

꿈꾸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해변을 걸었다


멈추면

완성되지 못하는 침묵이 굴속에서 울었다



-송승언 시집『철과 오크』 / 문학과 지성사,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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