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slovas Cesnakevicius Photography
주유소
윤성택
단풍나무 그늘이 소인처럼 찍힌
주유소가 있다 기다림의 끝,
새끼손가락 걸 듯 주유기가 투입구에 걸린다
행간에 서서히 차오르는 숫자들
어느 먼 곳까지 나를 약속해줄까
주유원이 건네준 볼펜과 계산서를 받으며
연애편지를 떠올리는 것은
서명이 아름다웠던 시절
끝내 부치지 못했던 편지 때문만은 아니다
함부로 불 질렀던 청춘은
라이터 없이도 불안했거나 불온했으므로
돌이켜보면 사랑도 휘발성이었던 것,
그래서 오색의 만국기가 펄럭이는 이곳은
먼 길을 떠나야 하는
항공우편봉투 네 귀퉁이처럼 쓸쓸하다
초행길을 가다가 주유소가 나타나기를
기다려본 사람은 안다 여전히
그리운 것들은 모두 우회로에 있다
주유소의 건물을 보면 커다란 우주선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이 세상에 존재는 하면서도 금세라도 어디론가 날아갈 것만 같은...
거주지가 되지 못하는, 그래서 나란한 다른 건물들처럼 이 지상에 붙박이지 못하는
쓸쓸한 그림자가 보이는 것이다.
그리운 것들도 이와 닮았을까?
목을 빼고 기다리지만 막상 마주하게 되면 정처가 될 수 없는 것...
차를 가다가 잠시 멈추는 우회로의 휴게소나 주유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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