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호주 / 백상웅

kiku929 2016. 6. 9. 13:41

 





호주



  백상웅

 



  그날 우리는 여섯과 서른 하나였는데 요즘은 서른 둘과 쉰 일곱.


  첫 이사를 하던 봄날도 말이 없었는데 우린 지금도 말이 없다.
 

  시간 가도 나이가 좁혀지지 않는 아버지와 내가 그렇다는 거다.
 

  그날 경운기 타고 꽃잎 터지는 속도로 윗마을에서 아랫마을로.

 
  가족을 태우고 모든 세간 싣고도 자리가 넉넉히 남았던 경운기.
 

  나는 지금 가진 게 없다. 아버지는 그때도 늙었고 지금도 늙었다.
 

  그간 꽃은 몇만번 폭발했나. 우린 몇 킬로그램이나 말을 섞었나.


  우리의 등본은 자꾸 뒷장으로 뒷장으로 도시를 넘고 동을 넘는다.

 
  언제부턴가 우린 사력을 다해 방을 구한다. 이제 근력 다할 때까지 이
리 살아야 하나 싶은 것인데.
 

  주름 그어지는 생들은  왜 자꾸 경운기 모터처럼 시동을 거는가.

 
  어쩌다 보니 그날의 아버지보다 늙어버렸다.  또 벚꽃이 날린다.

 

 


-계간『창작과 비평』(2012. 여름호)



 


*

어머니는 76세에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67세에 돌아가셨다.

내가 37살, 22살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 이상 늙지 않으신다.

그래서 나와의 나이 차이도 점점 줄어든다.

나이를 먹으면서 나는 부모의 입장이 되고, 부모의 입장이 되면서 부모를 진심으로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이해할수록 후회도 점점 쌓여만 간다.

나는 어쩌면 부모님이 살지 않았던 시간까지 살런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어쩌면 나의 후회들이 다시 위안으로 바뀌게 될까.


여자인 나는 점점 어머니와 닮아간다.

어릴 때 보았던 어머니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할 때마다 흠칫 놀라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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