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1.01 나의 베란다
사소한 햇빛
송종규
내 몸은 긴 이야기
많은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몸속을 흐르고 있음을 나는 안다
일 년 내내 발바닥이 시린 것도, 왼손으로 덥석 악수를 청했을 때
약간의 자괴감 같은 것도 이런,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다
누군가 내 삶에 개입했고 누군가 끝없이 내 속에서 중얼거리지만 사실,
그들이 완성한 것은 미완의 내 노래에서 미어져 나오는
무성한 햇빛 같은 거, 이 지독한 폐허같은 거
폭설이 내린 듯 문득 세상이 잠잠해지면 나는 잡목림처럼 무성해진다
몸의 긴 회랑을 돌아다니는 가로등 불빛, 도란거리는 그릇 소리, 연애, 전래 동화, 그리고 겨울 산 능선,
그들이 품고 있는 사무치는 이야기들
그들은 꿈결인 듯 스며들어 있거나 슬픈 탕자처럼 돌아 온다
왼손잡이는 안 된다고 오른쪽으로 숟가락을 옮겨 주던 사람은
노을 속으로 들어가고 없지만, 상수리나무 숲으로 들어간
여름밤의 술래는 아직 찾지 못했지만
뜨겁고 시리고 물컹한 것이 내 노래에 묻어 있다
그 길고 긴 슬픔을, 사소하고 사소한 햇빛을, 그리고 커다란 당신
그러므로 내 몸은 긴 이야기, 이야기는 늙지 않는다
천년의 안쪽, 혹은 바깥쪽
-『공중을 들어 올리는 하나의 방식』 민음사, 2015.
나의 베란다에 햇살이 쏟아지는 계절,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나는 무한히 평화롭다.
일 년동안 화초와 나 사이의 이야기들이 저 햇살에 녹아들어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처럼
세월은 한 순간, 어떤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된다는 느낌.
길게 본다면 삶 또한 그렇게 완성될 거라는 생각.
미완이란 것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이미 완성이므로...
끝나지 않은 노래, 끝나지 않은 사랑, 끝나지 않은 인생은 없다고.
나의 몸 속에 풍경처럼 각인되어 있다가 종내 몸과 함께 사라지는 것들,
그러나, 나의 전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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