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사랑의 언어
김현
남자가 문을 열고 떠났다
가지 마
남자가 손을 뻗었으나
가슴이 열렸다
새가 날아갔다
남자는 따라갔다
새는 시계탑 위에 앉아
떨어지는 것을 보며 지저귀고
눈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눈으로 그리고 입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입으로 들어라
가슴이 열린 남자는
쭈그리고 앉아 새를 보며 손짓했다
돌아와
남자의 열린 곳으로 눈보라가 세차게 들이쳤다
새는 한 번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고
남자는 한 번도 아래를 내려다보지 않았다
남자 속에 눈이 쌓이고 남자는 입김을 내뿜고 남자의 눈동자에 성에가 끼고
남자는 가슴에 글씨를 썼다
들어와
새의 열린 곳으로 밤이 세차게 들이쳤다
검은 눈은 오랜 시간 내려오지 않고
검은 눈은 오랜 시간 내려오지 않았다
남자의 머리카락이 새하얘지고
새의 깃털도 그러했다
햇빛 찬란해서
녹을 것들은 다 녹고
저만치 흘러가는 것을
보다 못한 남자가 눈을 떨어뜨린 채 시계탑 위로 오르고
새는 가만히 앉아서 드디어 위를 올려다보고
눈이 부셔서 말을 잃었다
가지 마
남자는 손을 뻗었으나
새는 다 녹았다
남자의 가슴이 흘러내렸다
남자는 따라갔다 어딘가에서
늙어버린 남자가 문을 열고 돌아왔다
남자는
남자의 가슴에 눈을 대고 보았다
회색 시간과 겨울 빛
부드러운 살결
남자에게서 흘러나와 남자에게로 흘러가는 물
흰 참새들이 흐트러진 목소리들을 몰고 와
남자의 입속으로 넣었다
남자가 마지막으로 입술을 움직일 때
남자는 가슴에서 눈을 떼고
남자는 창밖에 앉은 것을
무심코 들었다
1)창문과 깃털이 필요한 사랑이 있어요 흰 보자기로 얼굴을 감싼 연인이 서로의 입술을 찾지 못해 방황해요 그 좁은 얼굴에서 그 넓은 입술을 찾지 못하다니 둘의 얼굴에서 목소리는 점점 사라지고 이제 그들의 목 위에는 흰 보자기가 너울대는 소리 모든 눈이 어둠 편에 설 때 늦은 밤에 북서쪽에서
-《월간 시인동네》 2016년 10월호 중에서
아침, 시를 읽는다.
시를 읽는 시간은 내가 시간 밖에 있다는 생각,
그래서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잠시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서 오늘 아침은 이 시가 내 안에 들어온 것일까.
동화 같기도, 그림 같기도 한...
슬픔의 실체도 없이 다만 어른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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