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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대산문학상 수상소감 - 詩 부문 김사인

kiku929 2016. 12. 28. 09:25

 

 

  과분한 자리를 마련해주신 대산문화재단 측과 심사위원들게 어설프나마 시와 문학에 대한 제 마음의 일단을 여쭙는 것으로 답례를 대신할까 합니다.

 

  제가 소중히 여기는 우리말 중에 섬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섬김이라는 말을 입안에서 굴려보는 것만으로도 저는 좀더 순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갖습니다. 외람되지만 저는 제 시 쓰기가, 적으나마 세상의 목숨들을 섬기는 한 노릇에 해당하기를 조심스러이 빌고 있습니다. ‘섬김의 따뜻하고 순결한 수동성 속에서 비로소 가능할 어떤 간곡함이 제 시 쓰기의 내용이자 형식이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시가, 제 말을 하는 데 바쁜 시 쓰기이기보다 남의 말을 들어주는 시 쓰기이기를 바랍니다. 앞장서 서두르는 시이기보다 묵묵히 기다리는 시이기를, 할 말을 잘 하는 시인 것도 좋지만, 침묵해야 할 때에 침묵할 줄 아는 시이기를 먼저 바랍니다.

 

  저의 시가 이기는 시이기 보다 지는 시이기를 바랍니다. 밝고 드높은 웃음도 아름답지만, 영혼은 언제나 설움과 쓰디씀 쪽에서 더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감히 그들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비 맞는 풀과 나무들 곁에서 함께 비 맞고 서있기’로써 저의 시 쓰기를 삼고자 합니다. 우산을 구해오는 일만 능사라고 목청을 높이지 않겠습니다. 그 찬비 맞음의 외로움과 슬픈 평화를, 마음을 다해 예배하겠습니다. 곁에 서서 함께 비 맞음의 지극함으로써 제 몫의 우산을 삼겠습니다. 제 몫의 분노를 삼겠습니다. 지는 것으로서, 짐을 독실하게 섬겨 치르는 것으로서 제 몫의 이김을 삼겠습니다. 그것으로 저의 은유를 삼고, 그것으로 저의 환유를 삼겠습니다. 그것으로서 저의 리얼리즘을 삼고, 전복적 글쓰기를 삼고, 할 수만 있다면 저의 생태적 상상력과 저의 페미니즘을 삼을 수 있기 바라겠습니다.

 

  이 소망이 과한 것이라면, 부디 저의 시 쓰기가 누군가를 상하게 하는 노릇만이라도 아닐 수 있기를 마지막으로 간구하겠습니다, 풀과 돌의 이름을, 거기 그렇게 있는 그들의 참다움을 내 시를 꾸미려고 앗아 오지 않겠습니다. 지어낸 억지 이름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제 이름을 꽃피울 때를 오래 기다리겠습니다. 그들이 열어 허락한 만큼만을 저의 시로서 받들겠습니다.

 

그리하여 큰 수행이자, 큰 과학이자, 큰 예배로서, 저에게 시 쓰기가 오래도록 다함이 없기를 기원할 따름입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2006년 대산문학상 수상 소감




*

한 구절 한 구절 오래토록 시를 써온, 시와 더불어 살아온 한 시인의  사상과 철학, 시에 대한 겸손한 자세를 엿볼 수 있어서

음미하고 읽게 된다.


'풀과 돌의 이름을, 거기 그렇게 있는 그들의 참다움을 내 시를 꾸미려고 앗아 오지 않겠습니다. 지어낸 억지 이름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겠습니다. 그들이 스스로 제 이름을 꽃피울 때를 오래 기다리겠습니다. 그들이 열어 허락한 만큼만을 저의 시로서 받들겠습니다.'

'저의 시가 이기는 시이기 보다 지는 시이기를 바랍니다. 밝고 드높은 웃음도 아름답지만영혼은 언제나 설움과 쓰디씀 쪽에서 더 온전하게 제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는 까닭입니다. 그러나 감히 그들을 위한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남의 말을 내 이야기처럼 가져와 시를 쓰거나, 사물이나 타인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자기 멋대로 해석하고 판단하려 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하신다.

시가 굳이 사실일 필요가 없다고 어떤 시인의 시론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선생님 말씀을 빌려와 표현하자면 ' 그러한 시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하는 질문을 해본다.

그러므로 시를 쓰기 위한 시 쓰기는 하지 말자, 이것이 지금 내 현재의 시에 대한 다짐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