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마음

kiku929 2017. 7. 3. 01:23




늦은 밤,

빗소리를 들어본지 참 오랜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빗소리를 듣는다.

내가 좋아하는 비는 일정하게 고요하게 추적추적 내리는 비이지만 요즘은 그런 비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기후변화 때문일까. 

무섭게 쏟아지다가 또 그치다가 바람이 거세지다 또 폭우가 쏟아지는 그런 비를 자주 만난다.

오늘 밤 역시 불안정한 리듬의 비다.

불안정한 것은 어딘지 두려움을 준다. 불안정하다는 것은 그러나 내 몸 어딘가를 깨어나게도 한다.

어쩌면 삶의 에너지는 그런 불안정성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이제 평화로운 것이 좋다.

예전 나이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 라는 그런 질문을 받고 그냥 산책하듯 살고 싶다, 라는 대답을 한 기억이 있다.

산책하듯 사는 삶은 어떤 것인지 나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관념의 세계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평온을 말한 것이었다.

아무리 좋은 것, 아무리 흥분될 만큼 새로운 것, 맛있는 것, 아름다운 것이라고 해도 나는 평온을 바탕으로 하고 싶다.

나에게 평온이란 단어는 행복과 등가되는 이름이다.


요즘은 자주 잊는다.

돌아서면 잊고 막 떠오른 어떤 단어나 이야기가 1초도 안 돼서 사라지기도 한다.

순간 하얗게 된다는 그 말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따금 사람의 말 중간에 나도 모르게 끊어버리고 말할 때가 있다.

그것은 지금 막 생각난 그 말이 곧 달아나버리기 전에 말해야 한다는 강박증 때문이기도 하다.

그만큼 자주 잊고 자주 뭔가를 잃어버리곤 한다.

내가 변화하는 몸에 적응하는 시간보다 몸이 변화하는 시간이 더 빠르다.

그것이 나를 때때로 우울하게 한다.

그러나,

그러나 니체식의 위대한 긍정 " 응, 그래"라는 그 말을 가슴에 새기면서 시간이 주는 것을 받아들여야겠다는

다짐도 아울러 한다.

인생을 산다는 것은 한그루의 목련나무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꽃의 절정과 꽃의 쇄락 그 꽃의 소멸까지 다 지켜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잘 살아낸 인생이 아닐까, 뭐, 그런.


잠을 이틀간 자지 못해서 오후 내내 몹시 피곤했는데 막상 이렇게 한밤이 되고나니 정신이 깨어난다.

내일은 월요일, 한 주 잘 살아봐야겠다.


비오는 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정취라서 쉽게 잠들고 싶지 않은 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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