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나고야의 돌림 노래 / 박은정

kiku929 2018. 1. 6. 20:29



나고야의 돌림 노래




박은정





두 손을 움켜쥐고

줄넘기를 돌리는 밤


한 번 두 번 세 번

공중으로 떠오를 때마다

어제의 파랑이 빛나고


붉은 개미떼들이

땅속으로 흘러가며

너의 아름다운 발음을 통과한다


나고야,

너는 죽었니 살았니

스무 개의 입술이 너를 반복할 때

우리는 무엇도 간섭하지 않으며 땀을 흘리고


너의 퍼머넌트 머리칼과 작은 가슴이

환영처럼 흔들리면


나고야,

너는 흥미로운 중심부

매초마다 변하는 감정 아래

서로의 똑같은 표정을 견디는 것


꽃가루가 흩날리고

성급한 여름이 오고 있었다


다리에 걸린 줄이

밤의 한철을 넘지 못할 때

나고야, 이것은 너의 이름이 깊어지는 병


열뜬 잠의 출구가 열리면

더없이 다정한 돌림노래를 부른다


감정의 바닥도 없이

낯선 도시는 어둠을 새기며

척, 척, 척,


꿈에서 추락할 때마다

한 척씩 키가 자라는 소리를 지르고


나고야,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공중을 뛰면 발바닥이 아파왔지


어떤 부유의 밤에도

젖은 얼굴이 서럽지 않도록


네 눈썹에 얹힌 꽃잎

한없이 투명해진다




-시집『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문학동네,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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