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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속의 自序들

kiku929 2018. 8. 4. 14:44


<아래의 시집 속의  自序들은 daum 카페 <시사랑> 게시판에 올려진 글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날 배웅해준 아버지와

아주 먼 미래로부터 한생을 되짚어 날 마중 와준 딸에게.

 

2018년 7월

김중일

 

[가슴에서 사슴까지], 창비, 2018.






 

시가 시시한 시대일수록

시시하지 않는 시를 써야 한다.

 

2018년 여름 서울에서

최승호

 

 

          *

 

 그동안 시는 나의 돛이자 덫이었다.  시가 부풀어 나를 설레게 했고 사해를 항해하게 햇으며 닻 내릴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러나 때로 시는 나를 괴롭혔다. 버리기 싫은 덫처럼 말이다.―「시작 노트」

 

 

[방부제가 썩는 나라],문학과지성사, 2018.







詩 때문에 그것 아닌 것들을 많이도 아프게 했는데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그것이 나의 삶일지라도

헛살았다는 느낌.

내가 욕한 것들과 나는 얼마나 닮아 있으

며 또한 닮으려고 안달했는지 들켜버리게

되었으니.

 

 그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방황했다.

 

                                                 1993년 봄

                                                     김중식

 

[황금빛 모서리],문학과지성사, 2017.(1993)

 




 

누군가 건네준 낙엽을 맛보는 밤

긴 잠이 겨울밤을 숨길 수 있는가

 

2018년 6월

강성은

 

 

     *

 

작년에는 남자였다가

올해부터 여자가 된 사람

어제는 노인이었는데

오늘은 아기가 된 사람

 

작년에는 동물이었다가

올해부터 식물이 된 사람

어제까진 지구인이었는데

오늘은 외계인이라는 걸 알게 되고

 

겨울이면 얼고

봄이면 녹는

 

불 없이 타오르고

물 없이 익사하는 사람

 

많은 창문을 가진 사람 바람 부는 밤 덜컹이는 덧문들을 그는 어떻게 잠재울까 모르는 길들이 대추 잎사귀처럼 반짝거리며 나타났다 「암모니아 애비뉴」를 들으며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간 아이를 생각했다

 

 

 

[Lo-fi],문학과지성사, 2018.

 

 

 

 


 

 

나는 근본주의자였다.

두 손으로 번갈아 따귀를 맞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탈과 혁명의 양안兩岸에 머리 찧을 때

나의 시 또한 종교이자 이념이었다.

 

지상에 건국한 천국이 다 지옥이었다.

 

삶은 손톱만큼씩 자라고 기울었다.

지구를 타고 태양을 쉰 번 일주했다.

봄 새싹이 다 은하수의 축전祝電이었다,

천국은 하늘에, 지옥은 지하에, 삶과 사랑은 지상에.

 

2018년 여름

김중식

 

[울지도 못했다], 문학과지성사, 2018.

 




 

우울은, 쓰게 한다.

명랑은 그걸 오래 계속하게 하고.

주름 없어 잘 웃지 않는 명랑은 말한다.

네 모멸의 기쁨, 겸손의 쾌락을 내려놓아라……

다 내려놨어, 나는 거짓말하고.

명랑하고.

아야, 내 신세야……

 

2018년 7월

이영광

 

         *

 신음이 분절되지 않아 뜻을 알 수 없는 말이지만, 신음보다 인간의 고통을 더 잘 전해주는 말을 들어본 적 없다. 그래서 시에는 이해를 넘어서는 이해나 이해에 앞서는 소통이 있음을 믿게 된다. 신음의 뿌리에는 침묵이 고여 있다. 침묵을 들을 수 있을까. 들을 수 있다. 완전한 침묵이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침묵은 마모되어 벗겨져 나간 뭇소리들의 음원音原이다. 엔지니어가 깨진 파일을 복구하듯 시는, 침묵이 바로 침묵이 될 수밖에 없어 걸었던 상처의 길을 더듬으며, 고통이 남긴 메아리를 찾아 어디든 나아간다. 그것은 상한 인간, 상한 현실의 실어증을 방해하고 교란하는 무명無明의 언어들을 듣는 일, 그러니까 침묵의 불완전성에 귀기울이는 일이다. 비참의 탄식에 눌려 말문이 막힌 곳은 늘 새 말이 태어나지 않으면 안 되는 자리다. 시는 침묵의 미궁에 빠진 영혼이 어쩔 수 없어 타전하는 모든 종류의 기척과 신호를, 믿음이라곤 모르는 믿음으로 처음 믿으려 한다. 침묵은 기도처럼, 소리로 되어 있다.  

 

                

[끝없는 사람],문학과지성사, 2018.

 





 

 

우리는 잘 도착했습니다

'잘'이라는 부사가 생략하는 것들과 함께

 

 

 

[로라와 로라], 민음사, 2018.

 

 

 

 

 

늘 마음만 남고 몸은 숨는다.

내 나름의 시 이론서를 하나 쓰고 싶었으니, 이 책으로 대신한다.

 

 

2018년 4월

김포에서

박철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 창비,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