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
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하니?
마침내
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하니?
한 나무의 아름다움은
다른 나무의 아름다움과 너무 비슷해
처음도 없고 끝도 없고
의문문으로 시작했던 이 시, 이제는 평서문으로 고쳐 읽
어본다. 한 나무에게 가는 길은 다른 나무에게도 이르게 한
다. 마침내 모든 아름다운 나무에 닿게도 한다. 한 사람을 향
한 열렬함이 마침내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
게 할 것인지의 의문으로 시작했던 이 시, 그러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내가 서 있던 자리와 내 모습을 그려 보여줬던 시, 시 안
에서 시로 인하여 기르게 된 힘으로 다른 삶을 살기로 꿈꾸
었던 시간, 세번째 시집 『붉은 밭』의 시간, 그때의 시들을 다
시 돌아보니 끈기가 시의 힘을 키워준 게 아니라, 시의 힘이
끈기를 길러준 것 같다. 내 존재의 유한함을 견디게 해준 것
은 시였고, 사랑의 불가능함을 견디게 해준 것도 시였다. 그
러나 언젠가는 이 사랑의 불가능함이 가능함으로 바뀌게 될
날도 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나
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시는 언제 돌아와도 늘 나를 받아주
는 출발점이었으니까.
2019년9월
최정례
「「붉은 밭」」 (창비, 2019) 중에서
*
"그때의 시들을 다시 돌아보니 끈기가 시의 힘을 키워준 게 아니라, 시의 힘이 끈기를 길러준 것 같다. 내 존재의 유한함을 견디게 해준 것은 시였고, 사랑의 불가능함을 견디게 해준 것도 시였다. 그러나 언젠가는 이 사랑의 불가능함이 가능함으로 바뀌게 될날도 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런 날이 오지 않는다 해도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시는 언제 돌아와도 늘 나를 받아주는 출발점이었으니까"
이 구절을 몇번이고 읽어본다. 시는 나에게 무엇이었을까... 시는 나에게 무엇을 주었을까.
이 구절은 그 대답이 될 것이다.
지금 나는 가게를 나와 일을 한다.
항상 잘 되는 것이 아니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 주문을 외며 일을 한다.
그 주문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침 집을 나올 때 주문을 외우며 나온다. 청소를 하고 정리를 할 때에도,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에도 주문을 외운다.
시를 통해 얻은 것은 견디게 해주는 힘이다.
그리고 변함없이 뭔가를 한다는 것, 그 가치를 알게 해주었다.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반응이 없어도 나는 꾸준히 만든다.
스스로에게 늘 회의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바꾸지 않는다.
사회생활 한번 하지 않고 결혼하고 가정 안에서만 살아온 내가 그나마 이렇게 가게를 이끌어갈 수 있는 것은
내가 시를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의 의미는 이런 무형 속에 존재한다는 것을, 무의미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만큼 순수한 것은 없다고,
그리고 그러한 일에는 정신의 힘으로 이어간다는 것을 시는 내게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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