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한 곳에서 살았던 나의 공간.
그곳에서 짐이 내려오고 있다.
처음 이사할 때 어린나무였던 모과나무가 3층을 훌쩍 넘어 손을 뻗으면 모과나무의 잎사귀들을 만질 수가 있게 되었다.
비오는 밤이면 혼자 창을 열고 모과나무 잎들을 만지곤 했던 일도 이제는 지난 시간으로 가버렸다.
이삿짐을 나르시는 분이 모과나무를 보더니 "이사올 때 어떻게 오셨어요?" 묻는다.
그래서 30년 전에 와서 지금까지 살았다고 하니 깜짝 놀라신다.
할 수 없이 모과나무를 잘랐다.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보고 싶지 않았다.
아침에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비가 개고 그지없이 맑은 날이었다.
어딘가로 떠나기에 좋은 날이었다.
누가 그랬다. 서운하지 않냐고.
그래서 말했다. 아주... 아주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지겠지만 지금은 돌아보고 싶지 않다고.
오면서 참 많이 버렸다. 버리고 또 버렸다.
간직하고 싶은 물건보다는 꼭 필요한 물건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했다.
물건을 버리는 것은 시간과 기억을 눈앞에서 치워버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바라본 하늘...
내가 가장 그리워할 창문.
책상이 있던 작은 방의 창문 앞으로 키가 큰 가문비 나무가 보였다.
비가 내리면 창을 열고 누워서 가문비 나무에 비 맞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마냥 좋았다.
30년을 살던 곳을 떠나오면서 아는 사람 두 세 명과 식사 한번 하는 것이 고작일 만큼 왕래가 없었던 나였다.
나의 이별식이라는 것은 전 날 창을 열고 모과나무 잎을 만져보는 일, 그리고 가문비나무를 바라보는 일로 대신했다.
그것이 다였다.
아마 나는 어디서든, 그리고 언제 떠나든 그러할 것이다.
마치 한 계절 머물다가는 풀벌레들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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