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인터넷에서 구매한 책이 도착했다.
모두 세 권이었는데 한 권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한 권은 기대한 만큼, 아니 그 이상이었으나 엄밀하게 말하면 그것은 글을 잘 쓰는구나, 하고 끄덕였을 뿐 감동을 주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잘 쓰려고 한 문장들이 곳곳에서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그 책은 자신의 특별한 직업 (죽은 자의 집을 청소해주는)을 통한 특별한 경험을 쓴 글이었는데 그토록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묘사들이 정말 필요했을까, 하는 의구심을 주었다. 필요이상의 치장처럼, 아니면 필요이상의 과시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그런 묘사들이 작가가 그 책을 내려고 다짐한 그 어떤 목적 -분명 목적이 있는 책이었으므로- 을 위한 것이었나는 두고두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한 권은 김애란의「바깥은 여름」이란 책이었는데... 이 책이 다시 나로하여금 책에 붙들리게 하고말았다.
방심한 사이에 훅 들어온 펀치처럼 잠잠해졌다고 믿었던 감정이 다시 소용돌이쳤다.
책 한권을 일을 하면서 하루에 다 읽었다. 나는 행복했다. 나는 다시 설레었다.
오늘 아침 출근하니 창가에 쌓아놓았던 책이 젖어있었다.
비만 오면 빗물이 새는 창가... 여름내내 책들이 젖어 치워지고 버려졌던 창가.
그래도 나는 창가에 책을 쌓아놓는다.
그리고 비가 와서 젖으면 다시 치운다. 비가 내리고 그치기를 반복하듯이 나의 이런 행위도 비처럼 반복했다.
치우고 싶은 책에 치워야 하는 당위성을 안겨주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밤새 창가에서 젖은 책 속에는 단풍잎들이 갈피마다 끼워져있었다.
나는 반쯤 마른 단풍잎을 다른 책갈피에 다시 끼워두고 젖은 책을 펼쳐 글자들을 읽어나갔다.
얼룩은 남겠지만 책은 다시 마를 것이다.
그 책 속에는 젖지 못하는 글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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