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지금은 꽃피는 중 / 류외향

kiku929 2010. 1. 14. 20:44

 

                   

 

 

 

 지금은 꽃피는 중

 

 

                            류외향

 

 

꽃 피는 시간은 길고 길었으나,

꽃들의 마음을 알지 못해

전 생애를 걸고 피는 꽃들을,

자궁 밖으로 밀어내는 이 봄의 통증은

달을 헛짚어오는 월경처럼 어지러웠고

저들이 이 세상의 허공에다 던진

아름답고 슬픈 투망에는

무엇이 건져질는지

 

발소리 삭인 채 다가와

앞질러 내달려가는 이 봄은

속수무책 피어나는 희망이어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네

다만 우연이므로

이 봄에 내가 있는 것

그리고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

돌아보면

꽃들의 꽃진 자리뿐이었으니,

무엇을 이름하여 부를 수 있을는지

 

지금은 청량하게 눈 씻는 중

봄이 꽃피는 시간을 말갛게 바라보는 중

그리고 저 만개한 우연처럼 그대

내게 들키지 않으며

오고가는 중

 

 

<꿈꾸는 자는 유죄다 > 천년의시작, 2002.

 

 

 

 

봄비가 내렸다.

머잖아 꽃이 피고, 머잖아 꽃들은 홀연히 자취도 없이 사라지겠지.

그래도 꽃들은 '지금은 꽃피는 중'이라는 한가지 사실에만 열중한다.

 

나도 이 봄날,

가망없는 희망 하나라도 등불처럼 걸어둘 수 있다면...

앞일은 모른다는 듯이,

마치 이번이 처음이라는 듯이

천진무구하게 피어나는 환한 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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