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목련에 기대어 / 고영민

kiku929 2010. 1. 14. 20:45

 

                  

 

 

 

 

    목련에 기대어

 

 

                         고영민

 

 

활짝 핀 목련꽃을 표현하고 싶어
온종일 목련나무 밑을 서성였네
하지만 봄에 면해 있는 목련꽃을 다 표현할 수 없네

 

목련꽃을 쓰는 동안 목련꽃은 지고
목련꽃을 말해보는 동안
목련꽃은 목련꽃을 건너
캄캄한 제 방(房)에 들어
천천히
귀가 멀고 눈이 멀고

 

휘어드는 햇살을 따라
목련꽃 그림자가 한번쯤 내 얼굴을 더듬을 때

목련꽃은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봄 내내 나는 목련꽃을 쓸 수도
말할 수도 없이
그저 꽃 다음에 올 것들에 대해
막막히 생각해보는데

 

목련꽃은 먼 징검다리 같은 그 꽃잎을 지나,
적막의 환한 문턱을 지나
어디로 가고

말라버린 그림자만 후두둑,

검게 져 내리는가
 

*고영민 시집 <공손한 손> 창작과비평사

 

 

 

 

 

 

꽃이 피면

그냥 꽃만 보지

마냥 꽃만 보지

 

참으로 무심도 하게 

가만가만 그 꽃이

다 이울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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