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꽃피는 중
류외향
꽃 피는 시간은 길고 길었으나,
꽃들의 마음을 알지 못해
전 생애를 걸고 피는 꽃들을,
자궁 밖으로 밀어내는 이 봄의 통증은
달을 헛짚어오는 월경처럼 어지러웠고
저들이 이 세상의 허공에다 던진
아름답고 슬픈 투망에는
무엇이 건져질는지
발소리 삭인 채 다가와
앞질러 내달려가는 이 봄은
속수무책 피어나는 희망이어서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네
다만 우연이므로
이 봄에 내가 있는 것
그리고 그대를 그리워하는 것
돌아보면
꽃들의 꽃진 자리뿐이었으니,
무엇을 이름하여 부를 수 있을는지
지금은 청량하게 눈 씻는 중
봄이 꽃피는 시간을 말갛게 바라보는 중
그리고 저 만개한 우연처럼 그대
내게 들키지 않으며
오고가는 중
<꿈꾸는 자는 유죄다 > 천년의시작, 2002.
봄비가 내렸다.
머잖아 꽃이 피고, 머잖아 꽃들은 홀연히 자취도 없이 사라지겠지.
그래도 꽃들은 '지금은 꽃피는 중'이라는 한가지 사실에만 열중한다.
나도 이 봄날,
가망없는 희망 하나라도 등불처럼 걸어둘 수 있다면...
앞일은 모른다는 듯이,
마치 이번이 처음이라는 듯이
천진무구하게 피어나는 환한 꽃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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