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돌이 준 마음 / 이제니

kiku929 2021. 2. 8. 18:15

돌이 준 마음

 

 

이제니

 

 

 

돌에게 마음을 준다. 빛나는 옷을 입힌다. 높다란 모자를 씌운다. 돌은 마음을 준 돌이고. 돌은 마음을 준 옷을 입고 있고, 돌은 마음을 입은 모자를 쓰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돌에게 마음을 쓴다. 살지 않는 돌에 제 말을 건넨다. 마음을 쓰고 쓰면서 마음을 두드리고 두드린다. 살아가라고. 사라지지 말고 살아가라고, 두드리고 두드리면 들려오는 것, 들려오고 들려오면서 날아가는 것. 여리고 여린 돌의 가루.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날의 고운 뼛가루. 날리고 날려서 들판으로 날아간다. 날아가고 날아가서 바닷길에 닿는다. 한줌 쥐어보는 돌의 마음. 손가락 사이로 흩어지는 돌의 시간. 길목과 길목에는 손길이 닿은 돌이 놓여 있다. 빛나고 높다란 것이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사랑하는 표정이 줄줄이 길을 가고 있다. 다정한 손끝이 가리키던 한낮의 빛, 품어주고 품어주던 너른 장소. 누구와도 같지 않은 억양으로 이름을 부르던. 큰 돌 위에 작은 돌. 작은 돌 위에 더 작은 돌. 쌓고 쌓으며 기도하던 두 손의 간절함으로 돌이 준 마음이 날아가는 옷을 입고 있다. 마음을 준 돌이 사라지는 모자를 쓰고 있다. 사라지는 모자를 쓴 돌이 사라지는 마음이 되어 닿고 있다. 마음을 다해 마음이 되어 마음에 닿고 있다. 사라지는 것으로 살아가면서. 살아 있는 것으로 휘날리면서. 몸을 보라고. 몸이 아닌 몸을 보라고. 돌이 준 마음을 안고 있다. 돌이 된 마음을 알고 있다. 몸 아닌 몸으로 움직이는 돌이 있다.

 

 

《현대시》 (2020년 4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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