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새는 날아가고 / 나희덕

kiku929 2010. 1. 15. 18:00

                                     

 

 

 

 

  새는 날아가고

 

                         나희덕

  

 

새가 심장을 물고 날아갔어

창밖은 고요해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접시를 앞에 두고

거기 놓인 사과를 베어물었지

사과는 조금 전까지 붉게 두근 거렸어

사과는 접시의 심장이었을까

사과씨는 사과의 심장이었을까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담겼다 비워지지

심장을 잃어버린 것들의 박동을

너는 들어본 적 있니?

둘레로 퍼지는 침묵의 빛,

사과를 잃어버리고도

접시가 아직 깨지지 않은 것처럼

나는 식탁에 앉아 있어

식탁과 접시는 말없이 둥글고

창밖은 고요해

괄호처럼 입을 벌리는 빈 접시,

새는 날아가고

나는 다른 심장을 삼키고

둘레를 가진 것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지

 

 

 *야생사과 <창비시선,2009.5>

 

 

 

심장을 물고 간 새는 아직 돌아오지 않고

세상은 그후부터 적막하였다.

심장이 사라질 때마다

고요는 고요속에 들어 점점 깊숙히 똬리를 틀어안고

 

심장이 없어도 심장소리는 날로 푸르러지는 이 조화,

무어라 말하면 좋을까...

 

심장을 잃은 것들은 말이 없다.

침묵만이 유일한 그들의 언어

자신의 심장소리만 공명처럼 울려대는 빈 몸통들의

그 쓸쓸한 허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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