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갈퀴 / 이재무

kiku929 2010. 1. 15. 17:59

 

                       

  

 

 

     갈퀴

 

                             이재무

 

 

흙도 가려울 때가 있다

씨앗이 썩어 싹이 되어 솟고

여린 뿌리 칭얼대며 품속 파고들 때

흙은 못 견디게 가려워 실실 웃으며

떡고물 같은 먼지 피워 올리는 것이다

눈 밝은 농부라면 그걸 금세 알아차리고

헛청에서 낮잠이나 퍼질러 자는 갈퀴 깨워

흙의 등이고 겨드랑이고 아랫도리고 장딴지고

슬슬 제 살처럼 긁어 주고 있을 것이다

또 그걸 알고 으쓱으쓱 우쭐우쭐 맨머리 새싹은

갓 입학한 어린애들처럼 재잘대며 자랄 것이다

가려울 때를 알아 긁어 주는 마음처럼

애틋한 사랑 어디 있을까

갈퀴를 만나 진저리 치는 저 살들의 환희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사는 동안 가려워 갈퀴를 부른다

 

 

 

 

제 몸 알듯이 타인의 몸을 아는 거,

제 마음 읽듯이 타인의 마음을 읽는 거...

그건 어디가 좋은지 어디가 싫은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를 다 아는 관계이다.

자기 문 밖에 타인을 세워둔 채로 어디까지나 예의바른 관계에선

절대로 될 수 없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고, 그래서 서로를 끊임없이 부른다.

말하지 않아도 나의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내 안의 사람...

그러나 불행히도 우린

타인에게 나를 알도록 마음을 주지도, 시간을 기다려주지도 않는다.

번거롭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서로를 맴돌다 끝내는 자기만의 세계로 돌아와 칩거하게 된다.

하지만 진정 위로받지 못하는 영혼은 춥고 어둡다.

 

서점에 가니 시집 겉 표지에 이런 글이 써있었다.

"그래도 그리운 것은 사람이다."

 

'그래도... 그래도...' 몇번을 되뇌여보다가 

시집 한 권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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