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첼로 / 채길우

kiku929 2024. 7. 16. 12:19

전통의상을 차려입은 고산지대 아낙은

말도 통하지 않는 여행객들에게

자신이 키운 돼지를 팔려고 했다.

 

피부병 걸린 껍질이 들고 일어나

문드러지고 변색된 돼지는

허약하고 작았지만

 

아낙은 튼실하고 문제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앞발을 한데 붙들어 품에 들어 올린 후

양 무릎으로 돼지 허리를 죄어 괬다

 

아낙이 돼지의 희멀건 배를

한 손으로 쓰다듬어주고

 

돼지는 날 선 비명이 드리운

그림자만큼 긴 울음을 터뜨려

 

거품 문 입으로부터 공명하는

침이 질질 흘러내리는 동안

 

햇살을 등지고 서서

현이 끊어진 채 풀풀 날리는

빛과 털과 텁텁한 공기

 

이상하리만치 또렷하고 홀가분한

이국적 선율의 여러가지 절망들이

눈부시도록 투명해

 

먼 나라의 허기와 영원까지도

꼭대기에서 내려다보는 전망처럼

낮고 오래 지속되는 듯했다.

 

 

[측광], 창비, 2023.

 

 

 

 

 

 

 

이 시를 읽고서 채길우 시인의 시집을 주문했다.

내가 텔레비젼에서 보았던 고산지대의 여인,

먼지가 풀풀 나는 척박한 땅에서 히잡을 쓴 가난한 여인,

그 여인이 돼지를 판다.

돼지는 병에 걸렸지만 여인은 관광객들에게 건강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배를 뒤집어 보인다.

작은 돼지의 허옇게 드러난 속살, 낮은 울음,

여인은 햇살을 등지고 돼재의 현을 연주하는 연주자가 된다

절망이 오히려 눈부시고 투명한 으을 켜는,

 

여인에겐 현실이지만 시인은 결국 자신이 관조하는 사람처럼 

현실과 동떨어지게 바라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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