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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는 깁는다 / 전태련

kiku929 2010. 1. 16. 12:26

 

                             

 

 

 

 

   기차는 깁는다


 

                             전태련

 

 

기차는 두 줄로 된 지퍼 채우듯

갈라진 것들을 깁는다

 

마을과 내川를 깁고

절개된 산과 바닥이 드러난 강

소낙비 맞은 통장을 깁고

바람 든 무 같은

아내의 철 이른 갱년기,

남북으로 터진 지도를 깁는다

 

기차를 업어야 한 몸이 되는 철길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

떡가래 빠지듯 따로따로 나오는

두 가닥 쇠심줄

너의 손잡기 이렇듯 힘든 일인가

 

말 듣지 않는 북실에 실밥 터지듯

매번 벌어지는 간격

헐거워진 지퍼 끌어올리듯

자그락,  자그락

내 맘에 기차 지나간다 

 

 

전태련 시집 <바람의 발자국>, 문학의전당, 2009. 

 

 

 

삶이란 것은 철로와 철로처럼 철저한 개별성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차가 철로위를 간단없이 기우며 달려가듯

우리들 역시 너와 나를, 삶의 슬픔들을 사는 동안은 쉼없이 기우려 할 것이다.

부질없다 할지라도 그렇게 목적지까지 가야하는 것이 기차의 운명이듯

우리의 운명인지 모른다.

 

얼마나 눈물겹고 아름다운 일인가...

닿지 못할 거리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일이란...

그 애씀이, 그 한결같음이...

 

그러니 인생은 아름답다.

어제 기웠던 하루가 오늘 다시 허허롭게 물러서더라도

우린 오늘 또 하루를 기우며 살아갈 것이니...


그 일이 설령 무망한 희망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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