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는 깁는다
전태련
기차는 두 줄로 된 지퍼 채우듯
갈라진 것들을 깁는다
마을과 내川를 깁고
절개된 산과 바닥이 드러난 강
소낙비 맞은 통장을 깁고
바람 든 무 같은
아내의 철 이른 갱년기,
남북으로 터진 지도를 깁는다
기차를 업어야 한 몸이 되는 철길
그가 지나가는 자리에
떡가래 빠지듯 따로따로 나오는
두 가닥 쇠심줄
너의 손잡기 이렇듯 힘든 일인가
말 듣지 않는 북실에 실밥 터지듯
매번 벌어지는 간격
헐거워진 지퍼 끌어올리듯
자그락, 자그락
내 맘에 기차 지나간다
전태련 시집 <바람의 발자국>, 문학의전당, 2009.
삶이란 것은 철로와 철로처럼 철저한 개별성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차가 철로위를 간단없이 기우며 달려가듯
우리들 역시 너와 나를, 삶의 슬픔들을 사는 동안은 쉼없이 기우려 할 것이다.
부질없다 할지라도 그렇게 목적지까지 가야하는 것이 기차의 운명이듯
우리의 운명인지 모른다.
얼마나 눈물겹고 아름다운 일인가...
닿지 못할 거리임을 알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피하지도 않고,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 일이란...
그 애씀이, 그 한결같음이...
그러니 인생은 아름답다.
어제 기웠던 하루가 오늘 다시 허허롭게 물러서더라도
우린 오늘 또 하루를 기우며 살아갈 것이니...
그 일이 설령 무망한 희망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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