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언제나 '엄마'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세상 날 가장 사랑해주고
이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엄마,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시장가고 안계시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엄마가 다니는 시장길을
따라 엄마를 찾아다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의 우산이었고 울타리였다.
그래서 세상사는 일이 내겐 쉬운 일이었고 평화로운 일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지금은 사는 일이 시들하고 쓸쓸하다.
살아가는 일이 녹녹치 않음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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