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엄마 걱정 / 기형도

kiku929 2010. 1. 9. 11:08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난 서슴없이 언제나 '엄마'라고 대답하곤 했다.

이세상 날 가장 사랑해주고

이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던 엄마,

학교에서 돌아와 엄마가 시장가고 안계시면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엄마가 다니는 시장길을

따라 엄마를 찾아다니던 기억이 있다.

 

엄마는 돌아가실 때까지 나의 우산이었고 울타리였다.

그래서 세상사는 일이 내겐 쉬운 일이었고 평화로운 일이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지금은 사는 일이 시들하고 쓸쓸하다.

살아가는 일이 녹녹치 않음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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