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인이게 보내는 편지 / 라이너 마리아 릴케

 

 

 

 

프란츠  크사버 카프스라는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릴케의 편지 십여편과

릴케에게 영향을 미친 연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꾸면진 책이다.

 

내게 가장 감명을 준 것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 편지에는 릴케의 예술론, 시에 대한 철학, 자신의 창작에 영향을 준

로댕이나 세잔느, 예스 페터 야콥센에 대해 릴케가 감동을 느꼈던 위대한 정신을

인간적으로 써내려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편지라는 형식은 가장 인간적인 소통이라는 점에서 릴케라는 개인이

겪을 수밖에 없는 고독이나 좌절, 갈등, 그리고 그런 내면을 창작과 결부시키는

자신과의 싸움의 과정이 가감없이 보여지는 것이기에

가장 사적이고도 진솔한 인간 릴케를 이해하게 해주는 것이다. 

 

연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은 개인적인 내용이어서 좀 지루해진 면이 없지 않았지만

이런 책이 아니고서야 릴케 자신의 이야기를 어디서 이렇게 생생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인가.

그것도 100년도 더 넘은 지금...

 

 

2010.1

 

 

 

 

만일 쓰는 일을 그만 둘 경우에는 차라리 죽어 버릴 수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 보십시오.

조용한 밤에 나는 정말 쓰지 않으면 안 될 것인가를 확인해 보십시요.

그리고는 마음 밑바닥에서 흘러나오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십시오.

 

근본적으로, 우리들은 가장 깊고도 중요한 일에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고독합니다.

 

성급히 대답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요. 당신은 지금까지 그 대답을 갖고 살아 보지 않았으므로

아무리 해도 그 대답이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것은 살면서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그 문제 속에서 살아 보십시오. 당신은 먼 장래의 어느 순간에 그 대답 속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고독한 사람은 식물의 아름다움이 사랑과 동경의 은밀하고도 지속적인 형태라는 사실을 압니다.

그런 사람은 식물을 보듯 동물을 볼 수가 있습니다.

동물들은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즐겁게 두 몸이 하나가 되어 번식하고 성장하는데, 그것은 단순하

육체적 쾌락이나 고토이 아니라 의지나 저항보다도 더 힘찬 필연성에 몸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 위에 놓으십시오.

당신의 내부에서 일어난 일이야말로 당신이 혼심의 애정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사랑은 오랜 세월을 두고 인생의 내부까지 깊이 파고드는 고독입니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승화되고 심화된 홀로 됨입니다.

 

슬픔이란 무엇인가 새로운 것, 알려지지 않은 것이 들어오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우리들의 감정은 깜짝 놀라 입을 다물고, 우리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은 뒤로 물러나서

거기에 고요가 생겨나며, 아무도 모르게 새로운 것이 그 가운데서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삶이 자기 길을 가도록 그냥 맡겨 두십시오. 제 말을 믿으십시오,

삶은 어떤 경우에도 올바른 것입니다.

 

절망은 언젠가 파괴자가 아니라 당신의 가장 훌륭한 친구로 변할 날이 올 겁니다.

아마도 절망은 당신의 삶을 구축하는 데 가장 현명한 친구가 될 겁니다.

 

마치 스케치할 때와 같이 눈길은 사물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면서도,

손만은 자기 길을 묵묵히 혼자서 가고 있는 것과 같은 거요.

 

죽음은 그것이 갖는 두려운 압력으로 인해 한 가지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그 죽음을 뛰어 넘어 보다 수확이 많은 삶을 살아가도록 우리들로 하여금

삶의 심오한 깊은 곳까지 내려갈 수 있도록 해야 할 임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활동하며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자연은 우리가 그 자연을 버려도 그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조급하게 굴거나 떨어져 나가거나 자연은 여전히 있는 그대로

우리들을 포옹해 주지만, 고독한 사람의 고통은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연은 완전한 것이기에 고독합니다. 자연은 어떤 상태의 경계선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고독의 훈훈하고 완성된 중앙 지대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