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기 / 오스카 와일드

kiku929 2010. 2. 10. 21:09
 
 
 
오스카 와일드 오스카 와일드는 1854년 10월 16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태어났다. 그는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문학을 전공했으며 1874년 옥스퍼드의 맥덜린 칼리지에 들어가 시 <라베나>로 뉴다이제스트 상을 받았다. '예술을 위한 예술'의 개념을 주장하는 유미주의 운동의 초기 리더로서, 와일드는 문학과 사회단체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그의 동화집 <행복한 왕자와 다른 이야기들>은 이후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과 <석류의 집>등 창작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가 더 유명해진 것은 희곡 <원더미어 부인의 부채>가 대중에 소개된 이후였다. <중요치 않은 여성> <진지함의 중요성>으로 극작가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00년 11월 30일 사회 부조리에 대한 날카로운 위트와 다가오는 새로운 세기의 미에 대한 예견자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던 와일드는 예술적 영감의 도시 파리에서 험난하고 고단했던 생을 마감했다.
 
 
 
동성애자로 영국에서 추방돼 프랑스에서 객사한 영국 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가 1895년 11월 13일 교도소에 송치된 날로부터 2년간 감옥살이를 하는 동안 집필한 마지막 산문 원고로 독약 같은 고독과 인생철학에 대 해 기술한 내용들이다. -다음에서 펌-
 
 
 
 
 

 

문고판의 얇은 책이라서 맘만 먹으면 몇시간 안에- 나같은 사람은 온종일 걸리지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군데군데 빛나는 말들이 많아  줄을 긋고 읽었다.
특히 슬픔에 관한 이야기라든지, 스스로 깨달은 것만이 자기 것이라는 말은 무엇보다 공감하게 했다.

나역시 슬픔이 인간의 감정중 가장 깨끗하고 맑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늘 했으니까...

 
 
 
 
슬픔 속에서 성스러운 부분이 있다. 언젠가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인생에 대해서 실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며, 또 이런 것은 그와 같이
어떤 특수한 성격을 지닌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나는 스스로를 파멸시켰으며, 또 어떠한 사람이라도 자신의 손 이외의 것으로는 파멸될 수 없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말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이제는 기꺼이 그런 말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의 사소한 행위 하나하나가 그대로 인격을 형성하거나 파괴한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인간은 그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가 그것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인간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얻은 것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자신의 경험을 후회하는 것은 그 자신의 발전을 스스로 저지하는 것이다.
또 자신만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신의 삶의 입술로 하여금 거짓말을 시키는 것밖엔 안 된다. 그것은 영혼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슬픔은 인간을 다시 신에게 귀의시킨다. -단테
 
이제야 나는, 인간이 감수할 수 있는 최고의 감정인 슬픔이야말로 위대한 예술의 근원이요, 시금석이라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인생이나 예술에 있어서의 궁극적인 전형은 역시 슬픔일 것이다.
기쁨이나 웃음의 이면에는 거칠고 굳은, 무감각한 기질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슬픔의 그늘 속에는 언제나 슬픔만 있을 뿐이다.
쾌락과는 달리 고통은 아무런 가면도 쓰고 있지 않다.
 
예술에 있어서의 진실은 바로 사물 그 자체와의 연합인 것이다. 내면을 표현하고 있는 외면이고, 육신화된 영혼이며, 영혼을 지닌 육체의 것이다.
 
만약 새벽이나 한밤중에, 그리고 기쁠때나 슬플 때 읽을 만한 좌우면 같은 것을 원한다면,
당신은 당신 집 벽에 햇빛 아래서는 금빛으로 빛나고, 달빛 아래선 은빛으로 빛나는 글자로 다음과 같이 써두면 좋으리라.
"나에게 일어나는 일은 타인에게도 일어나리라."
 
그(그리스도)는 삶이 어떤 사상이나 도덕 체계에 의해 희생당하는 것을 용인하려 들지 않았다.
그는 형식이나 의식이라는 것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형식이나 의식을 위해서 인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란 점을 강조했다.
 
나는 될 수 있은 대로 오래 살아서 나의 최후의 날에 '그렇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적 삶이 인간을 인도하는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성격의 작품을 남기고 싶다.
 
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는 것은 불합리하고도 위선적인 말밖에는 안 되지만,
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되는 것은 고통을 겪은 자의 특권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사려깊은 사람이 된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예술에 대해 더 이상 무슨 형식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에 무슨 형식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예외라는 형식'이 있을 뿐이다.
 
나의 예술과 세계 사이에는 엄청난 틈이 있지만, 나 자신 사이에는 아무런 틈도 없다. 나는 적어도 아무런 틈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는 슬픔은 그 이면에도 항상 슬픔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슬픔 뒤에는 항상 하나의 영혼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현명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의 모든 것을 충분히 보고 있으면서도 그 자연과 철저하게 동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 깨닫는 것만이 옳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