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
이생진
어느 쪽이 더 오래 머물러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만 같은 자리에 있고 싶다
이 사람이 저 사람을 보면
조금씩 동정이 가듯
저 사람도 이 사람을 보면
조금씩 슬퍼져서
한 번만
합쳐서 살고 싶다
얕은 저 사람의 부피에 살면
좁은 자리가 모두
공간으로 뚫리고
텅 빈 저 사람의 공간에 살면
좁은 구석인데
저 사람이 나인 것처럼
사람을 두 개씩 태어난 것도 같고
저 사람이 내가 아닌데도
떨어져 살면 그리운 버릇이
언제고 나는 내 옆에
또 하나 내가 있어야
살게 되나 보다
언제나 나를 내가 바라본다.
내가 생각하는 거, 말하는 거, 걸어가는 거...
내가 나에게 칭찬해주고 내가 나에게 위로한다.
배고프면 밥을 먹여주고 아프면 약을 먹여준다.
옷도 입혀주고 씻겨도 주면서 마치 인형놀이하듯
나를 내가 돌봐주며 산다.
죽는 날까지 나의 존엄을 잃지 않도록
내가 끝까지 나를 보호해주겠노라고,
기댈 곳 없는 여리고 나약한 나를
내가 지키지 않으면 지켜줄 사람이 없노라고...
나 하나 믿고 평생을 함께 하겠다고 든 나를
어찌 부끄럽게 만들까.
미안한 일이다.
그렇게 나는 나와 더불어 살아간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국화꽃 그늘을 빌려 / 장석남 (0) | 2010.01.09 |
---|---|
나무 / 이성선 (0) | 2010.01.09 |
당나귀 여린 발자국으로 걸어간 흙밤 /박정대 (0) | 2010.01.09 |
여치소리를 듣는다는 것 / 안도현 (0) | 2010.01.09 |
내 가슴에 비가 내리네 /베를레느 (0) | 2010.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