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있어 오후는 오전만큼이나 중요합니다.
그렇기에 인생의 오후는 오전과는 다른 법칙을 따라야 합니다.
'머물지 말고 흘러라' 중에서 / 안젤름 그륀
'사랑과 인식의 출발'이란 책에서 구라타 하쿠조는 이렇게 말한다.
"청춘 시기에는 청춘의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 청춘의 특징이어햐 한다"고...
불행히도 난 청춘시기에 청춘다운 옷을 입어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열정도 없었고 치열하지도 않았고 누군가를 애틋하게 사랑해보지도 않았으며
나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인생에 있어 난 오전의 법칙을 어긴 셈이다.
내가 인생의 시계의 법칙을 따른 적이 있다면 아마도 유년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후, 난 유년시절과 작별하지 못하고 청소년을, 또 청소년 시절과 작별하지 못한 채 청춘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 청춘의 시절과 작별하지 못한 채 지금 중년을 넘어가고 있다.
중년에는 중년의 옷을 입어야 하고 중년에 맞는 시계의 법칙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중년의 옷을 입지도 못하고 중년의 시계에 맞추지도 못한다.
사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른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근원적 문제라는 걸 나는 안다. 나와 현실과의 간극, 그 괴리감 소외감은 여기서부터라는 걸...
그렇다고 내가 피터팬 증후군같은 부류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난 오히려 요즘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관이나 기호등과는 전혀 맞지 않는 고리타분한 사람이니까...
나의 사고방식은 내 나이보다 훨씬 더 많은 세대와 맞물린다.
난 현대 사회와는 맞지 않는 아날로그적 생활방식과 느림의 미학을 갖고 있으며
고전적인 것, 손때묻은 것들, 마음이 머물던 지나간 것에 애착을 느낀다.
쿨한 것보다는 끈끈한 마음을 더 소중히 여기고
점차로 인식에서 사라져가는 언어들 -지고지순, 순정, 인연, 운명, 인간애,정성,꿈 등등 -을 사랑하며
세상을 기웃거리기 보다는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을 구석구석 찬찬히 바라보며 살고픈 욕심이 더 큰 사람이다.
예전 내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랑 있으면 내가 20대랑 같이 있는지, 30대랑 같이 있는지, 40대랑 같이 있는지, 50대랑 있는지 잘 모르겠어. 헷갈려."라고...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내가 도대체 누구인지...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어떤 옷인지도...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자체가 나라는 사람이라는 것, 난 그런 나를 껴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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