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우주
이병률
고개를 든 것뿐인데
보면 안 되는 거울을 본 것일까
고통스레 관계를 맺은 기억들,
기억의 매혹들이
마지막인 것처럼 몰려오고 있다
이제 쓰거운 것이 돼버린 파문들을
단숨에 먹어치우고 끝내버리자는 것일까
하나의 지구를 녹이고
또 하나의 지구를 바꾸게 되었다
기억하고 있다면 기억하지 말라는 듯
우주는 새들을 풀어놓았다
무엇으로 다시 천지를 물들일 것인가를
곰곰이 생각한 듯
소멸하지 않는 기억의 우주를
쌓이고 쌓이는 외부의 내부를
어쩌자고 여기까지 몰고 와서는
안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해를 보면 어두워지는
달을 보면 환해지는 기억들은
왜 적막하게 떠돌지 못하고
우주에 스미는 것일까
*시집 <찬란>
나의 외부의 내부,
해를 보면 어두워지고
달을 보면 환해지는 건
내 안에 있는 기억이라기 보다는
이미 나를 떠난
우주안에 스며든 기억이 되어버렸기 때문.
나에게 기억의 우주는 무얼까,
지금은 빛바랜 사진첩 속에 남아 있는
시간들이 아닐까.
지난 사진들을 보면 뭔가 영혼이 빠져나가고 남겨진
허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만지면 금방 바스러질 것만 같은...
그러면서 난 늘 그 주위를 맴돈다.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사랑은 / 오인태 (0) | 2010.03.22 |
---|---|
그대가 내게 보내는 것 / 박재삼 (0) | 2010.03.11 |
봄(春) /타니카와 슌타로 (0) | 2010.03.01 |
책 /타니카와 슌타로 (0) | 2010.02.27 |
안개 속에서 / 헤르만 헤세 (0) | 2010.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