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서랍

길,,,

kiku929 2010. 3. 3. 22:09

 

 

 

 

휴일,집 근처 야산을 다녀왔다.

따스한 햇살은 생의 날개를 접은 고요한 대지위로 사금파리처럼 눈부시게 내려앉고

지난 일년의 세월을 기억하는 낙엽들은 저마다 바스락 거리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더이상 물이 오르지 않는 청미래 덩굴의 붉은 열매, 마른 억새들이 바람에 저항없이 너풀거린다.

하지만 온전하게 죽은 것은 없으니... 회귀의 반환점에 잠시 서있을 뿐.

 

땅속에 옹골차게 박힌 돌멩이의 모서리를 밟으며 한발 한발 걸어가다보니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내가 걷는 행위만이 나의 전부가 된다.

내가 가야할 길을 찾아 걷는 산행...

사람들은 자신들이 길을 낸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산이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주는 건지 모른다.

걸음에 편한 땅을 골라 밟으며 사람들은 길을 내는 것이지만 그 땅은 결국 산이 내어준 길일 테니까...

그러니 길은 땅의 표정이고 땅의 말이라 할 수 있겠다.

이렇듯 사람과 산의 교감으로 내어진 길이니 어찌 그 길을 걷는 것이 편하지 않을까...

물길과 물길이 만나면 한 몸의 물결이 되어 흘러가듯 내가 길이 되어 걸어가는 것만 같다.

 

사람의 마음에 드는 일도 길을 내는 일과 마찬가지가 아닐런지.

누군가와의 관계가 편하지 않다는 건 그사람이 내어주지 않은 길을 내가 걷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내어주지 않은 길을 그사람이 걷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엔 고유한 자기만의 마음의 결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마음의 결에 흠집을 내지 않고 그사람의 마음속 길을 찾아 가는 것, 이것이 진정한 한 사람을 만나는

아름다운 비결이지 않을까?

길은 언제나 걷는자, 내어주는 자와의 암묵적인 照應이며 그러한 길 위에서라야 이물감 없는

편안한 행보가 되어줄 테니까.

 

모든 길은 늘 이어져있다.

다만 우리가 그 길을 찾지 못할 뿐...

하늘의 길이든 바다의 길이든 땅의 길이든 마음의 길이든,

길은 길에게 묻고 길을 가는 사람에게는 언제든 기꺼이 자기 몸을 내어준다.

            그것이 길의 태생적인 삶이고 속성이며 그리하여 길은 길로 새로이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길은 절망의 순간에서 빛이 되고 생의 희망이 되어준다.

길은 막힘이 없다.

 

 

 

 2008.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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