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벤치
박재희
멀리서 산책을 하다가도
의자를 보면 앉고 싶어진다
의자에는 항상 누군가의 체취가 묻어 있다
한가한 오후 노부부가 쓸쓸함을 기대다 가고,
아이들이 실 웃음을 흘리다 가고,
그늘이 몰래 쉬었다 가고,
가끔은 석양도 붉은 하늘을 끌고 와 놀다 간다
늦가을 날
의자 위에 나뭇잎이 떨어져 있다
가난한 죽음이다
죽음도 의자를 보면 쉬었다 간다
'죽음도 의자를 보면 쉬었다 간다' (참 멋진 표현)
나도 누군가에게 의자가 되어줬을까?
그럴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봄 날 내가 조금 더 어여뻐진다.
잠시라도, 조금이라도
내 자신이 타인에게 쓸모가 있었다는 것,
기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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