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로써 드디어 다 읽었다.
'드디어'라는 말에는 꽤 오랜 시간 읽었다는 뜻이고 또 조금은 지루했다는 뜻의 함의어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루하다는 표현이 이 책에 대한 조금의 평가 절하도 아님은 당연하다.
그건 나의 낮은 지식수준에 비추어 너무 난해한데 따른 느낌이었다고 말해야 할 테니까...
마치 처음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을 들었을 때의 느낌이라고 할까...
이 책의 표지에는 '파스칼 키냐르 장편소설'이라고 써있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설이라고 하기보다는
체험적 사랑에 관한 단상들이라고 하는 산문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대로 '은밀한 생'은 한마디로 사랑에 대해 작가가 이 책에서 말하고 싶어하는 주제가 되기도 한다.
사랑은 비사회적, 비언어적, 생 이전의 것, 가장 내밀하고 사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를 갖는다고 작가는 말한다.
때문에 사회, 집단, 가족, 결혼,아이와는 대립된 둘만의 소외된 집단이며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한 사랑의 본질을 작가는 신화에, 라틴어의 어원에, 고대로부터 이어지는 전설에, 혹은 벽화에 비유하며
끊임없이 탐색해 간다.
그러한 반복적이고 지리멸렬한 탐색의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순간 작가가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선명하지는 않아도 어렴풋한 빛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내 잠자리 곁에 두었던 책, 그만큼 매력적이고 빨리 읽고 싶지 않은 책이기도 했다.
사랑에 대한 사고의 전환과 폭을 더해준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책 내용중에서...
사랑은 열정으로부터 솟아나든가, 그렇지 않으면 결코 생겨나지 않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태고의 어둠 이래로 사랑에 빠진 자는 오래 전부터 그의 가족, 친척들, 그리고 집단이 그에게 마련해준 교환에서 빠져나온 여자 혹은
남자를 가르킨다. (이런 관계가 결혼을 하게되거나 출산을 함으로해서 사회에 귀속된다.)
언어에 이방인이 됨으로써 무언가를 발견했다. 모래 속에서 무언가를 끌어냈다. 설령 그것이 하나의 새로운 의미처럼 모든 것에 대한
생소함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없이 푹 찌르는 터치 같은 것에 불과할 지라도.
전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함은 굉장한 전달 수단이다.
지도자들은 언제나 무엇보다도 언어를 사랑했다.
그들은 언어가 하는 말까지 귀기울여 들을 정도로 언어들 사랑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눈을 뜨고 있어야만 한다.
즉, 가슴깊이 느껴지는 모든 것을 외면해야만 한다.
성실하려고 애쓴 무수한 말들이 도리어 우리를 허위로 변질시켰다.
모든 사랑은 이름붙일 수 없는 것의 비밀에 헌신한다.
실어증 환자에세 언어를 되찾게 해줄 경우 그는 단어를 넘어서는, 말의 범주 밖의,
음조의, 음악적인, 감정에 호소하는 의미 작용을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조금씩조금씩
잃어버린다고 한다.
영혼을 가진다는 것은 비밀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론, 영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탈을 비밀스런 곳으로 옮겨가면 그곳에 고독이 내려앉는다.
더 이상 사랑받지 못하는 것처럼 품위를 손상시키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랑- 두 감수성이 접촉하는 야릇한 의사 소통
1 사랑은 자신의 이익에 반(反)한다
2 사랑은 사회의 이득에 맞선다
3 사랑의 억제할 수 없는 행위들은 모두가 확장과 사심 없음이라는 특성을 지닌다.
아름다움이라는 특성, 즉 흘러넘침이라는 특성.
왜 사랑은 격렬한 상실 안에서만 느껴지는 것일까?
왜냐하면 사랑의 원천이 상실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태어나기, 그것은 자신의 어머니를 상실하는 것이다.
나는 어디서나 침묵을 지킬 것이지만, 그러나 침묵은 잃어버린 언어의 몫이 아니다.
침묵은 언어가 지니고 다니는 그림자일 따름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옛날에 우리가 어머니에게 소속되었던 것처럼 타인에게 소속하는 것이다 : 절대적으로.
그것은 타인이 고통을 받으면 사랑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타인이 죽으면 사랑도 죽는 것이다.
자신의 내부에서 사랑이 더 이상 온전하게 존재하지 못한다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다. 더 이상 보완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이 취약해지는 것이다.
사랑의 비사회성- '우리는 세상을 잃었고 세상은 우리를 잃었지요'
사랑은 과거다. 심지어 현재 실행 중인 사랑도 과거의 황홀경에 대한 한 추억이다.
인간의 나체란 없다. 매혹의 다른 극은 상실된 것이다.
문화적이고 교육받고 사육되고 말을 하는 우리는 더 이상 나체가 아니다.
우리가 그러기를 원할지라도, 우리는 다시는 나체가 되지 못한다.
그렇지만 옷은 벗을 수는 있다.
진지하기만 한 모든 인간은 인간적이지 않다.
사랑 본래의 비참함은, 가장 비사교적이고 가장 사적이고 대중과 신의 시선에 가장 폐쇄된 의사 소통의 결과가,
한 어린애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열림으로 귀착된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언어에 의해 중독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타인에 의해 중독될 수도 있다.
운명이란 우리가 벗어나지 못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다. 예:어머니의 언어 (모국어의 지배는 한 운명이다)
매혹에 관해서, 귀는 음악을 가지고 있다.
눈은 회화를 가진다. 죽음은 과거를 가진다. 사랑은 타인의 벌거벗은 육체를 가진다.
문학은 침묵으로 환원된 개인의 언어를 가진다.
패배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온다. 외부 세계에서는 패배가 없다.
사랑은 집을 바꾸게 한다. 노(老)카토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했다:
한 영혼을 그의 육체가 아닌 것 속에 살게 하는 것.
Pascal Quignard는 1948년 프랑스의 노르망디(외르의 베르뇌유-쉬르-아브르)에서 출생했다. 대대로 풍금 제작에 종사하던 집안의 영향으로 어렸을 적부터 갖가지 악기(피아노,오르간,바이올린,비올라,첼로)를 배우는 음악적 분위기에서 성장했다. 생후 18개월과 그의 나이 16세 때, 두 차례의 자폐증을 앓았었고, 1966년에서 1969년까지는 68혁명의 열기와 실존주의,구조주의의 물결 속에서 엠마누엘 레비나스, 폴 리쾨르와 함께 철학을 공부했다. 그의 나이 21세 되던 1969년에 [말 더듬는 존재]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또한 뱅센 대학과 사회 과학 고등 연구원의 교수로 재직했으며,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과 함께 "베르사유 바로크 음악 페스티벌"을 창단하고, 조르디 사발과 더불어 "콩세르 데 나시옹Concert des Nations"을 주재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갈리마르 출판사의 원고 심사 위원으로 발탁되고 1990년에는 위원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94년에는 집필 활동에만 전념하기 위해 위원장직을 사임했다. 그는 현재 파리 11구의 한 아파트에서 사랑하는 여인과 은밀하게(그의 집에는 전화가 없다)살면서 작품을 쓰고 있다. 이력만큼이나 수상 경력도 화려한 그는 1980년에 "프랑스 비평가 상"을, 1998년에는 "프랑스 문인협회 춘계 대상"을, 2000년에는 "아카데미 프랑세즈소설 대상"과 더불어 "모나코의 피에르 국왕 상"을 수상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뷔르템 베르크의 살롱Le Salon du Wurtemberg][샹보르의 계단Les escaliers de Chambord][음악 혐오 La Haine de la musique][세상의 모든 아침Tous les matins du monde]을 위시한 7권의 소설과 [소론집Petits Trait](전부 20권 예정으로 현재 8권이 출간되었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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