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막내가 유치원때부터 알게 된 엄마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네 명중 한 명이 유명한 자사고에 합격하게 되어 한턱 낸다고 부른 자리였다.
주로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가 엄마들이 내 얼굴색이 안좋다고 한마디씩 한다.
그러면서 나의 건강에 대해 말을 하게 되었는데 내가 암이라고 하자 몰랐다고 모두 놀란다.
그냥 췌장염이라고만 알고 있었다고..,
그런데 왜 그렇게(속으로 내가 어때서?라고 생각했지만)살아요? 라고.
내가 몸에 좋은 것을 골라 하거나 몸을 아끼거나 하지 않으니까 이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하는데요? 사실 내가 살 수 있는 시간이 일년이 남았다고 해도
생각해보면 그다지 특별한 일을 할 것 같지는 않아요.라고.
나에게 종교를 가지라는 엄마도 있었지만 난 내 자신이 특별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으므로
그건 종교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되지를 않는다.
난 종교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만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나 스스로 마음이 동할 때, 때가 되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아직은 나에게 믿음을 가질 때가 오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좀더 나이들면 아마도 성당이나 아니면 마음에 드는 절 한 곳에 적을 두고 믿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그럴 생각은 있으므로.
병원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신이 암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싫다고 했다.
하지만 난 누가 물으면 그냥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그러고는 "난 중증환자 카드도 있는 사람이예요."라고 웃는다.
내가 너무 낙관적인 것인지, 비현실적이어서 인지, 아니면 사태를 직시하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지만
사실 내가 인식하며 산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까?
내가 큰 수술을 끝내고 어느정도 몸이 추스려졌을 때 언니는 나에게 말했다.
이겨냈으니 대단하다고.
하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난 이겨낸 적이 없으니까. 다만 닥친 일이고 그 일방적인 일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내가 한 일이 있다면 그냥 시계를 보며 하루하루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이었을 뿐.
그때 난 사물처럼 무기력한 존재였다.
그렇다고 그런 일이 있고난 후 내가 뭔가 삶에 대해 좀더 애착을 갖게 되어 열심히 살게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잘 살아야지,하고 결심은 하게 되지만.
삶이란 그냥 그런 것 같다.
내 앞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존재의 의미가 되어주면서...
분명한 것은 사람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지 않으면 나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의미가 된다고 믿을 때,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할 때 내가 살아야할 이유와 명분도 커지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이 세상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날이 온다면...하고.
하지만 분명 그런 날도 올 것이다.
내가 가장 두려운 일이라면 바로 그런 날이 오는 것이다.
201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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