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이상도 하지.
예전엔 겨울이 참 싫었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겨울이 좋아지니...
지난 한 해의 흔적들이 폐허처럼 남겨진 땅위의 풍경들, 빈 나무 가지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산등성이,
눈이 남기고 간 잔설의 자취...
요즘은 거의 집안에서만 지낸다.
나의 외출이라면 고작 장보러가는 일, 어머님이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문안 가는 일,
한 달에 한두 번 친정에 가는 일뿐이다.
그리고 집안일과 책 읽기, 모처럼 '싸인'이라는 드라마를 시청하는 일...
한 도시의 중심에 살면서도 마치 세상과 등지고 외진 곳에서 은둔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같다.
이것이 요즘 나의 겨울나기의 전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얼마전엔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 단편집 한 권과 마리 앙뚜와네트의 전기소설 한 권을 읽었고
지금은 생 떽쥐베리의 아내 콩쉬엘로가 쓴 '장미의 기억'을 읽고 있다.
그녀는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 '장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사랑이란 것은 구속과 억압이 없는, 자유로움 안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물론 예전에도 모르진 않았지만 아는 것과 체득한다는 것은 다르니까.
계절이 겨울이어서인지 요즘 내 마음은 고요하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이 고요가 상실의 대가인 것만 같아 한없이 슬퍼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난 이 고요가 더없이 좋다.
슬프지만 상실이라는 것은 앞으로도 나 자신 승화되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나의 남은 인생의 과제인지도 모른다.
우린 어리석게도 빈 공간에서야 비로서 배우게 되는 존재인 것만 같다.
사랑도 현재가 아닌, 먼 훗날 사라진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지게 되었을 때서야
그 사랑의 진실한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마치도 꽃 진 자리에서만 열매를 볼 수 있는 것처럼.
무엇이든 대답의 열쇠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이 쥐고 있다.
하니 언제나 지금은 침묵해야 할 때...
밖은 벌써 깜깜해지고 가로등이 별빛처럼 빛나고 있다.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진다.
201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