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마음의풍경

흔적을 따라서 -보령 성주사지를 돌아보며...

kiku929 2011. 4. 18. 08:08

 

 

봄이 오기도 전에 난 필연처럼 이 봄을 맞이 하기 위해 어디로 떠날지에 대해 미리 정해놓고 있었다.

그곳은 보령에 있는 '성주사지'.

그것은 책을 읽다가 멈추게 된 아래의 한 구절때문이었다.

 

 

어느 해 초여름, 계곡에는 물안개가 솟아오르고 산 위에는 운무가 점점 낮게 드리우던

충남 보령 성주사 터의 비경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구름 위로 솟은 산봉우리와 계곡을 따라

흐르는 얕은 시냇물, 안개에 가려 보일 듯 말 듯 숨은 민가들 틈에 들어앉은 성주사지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 때 처음 알았다. 나무, 흙, 바람, 안개, 물, 나뭇잎 소리,

하늘을 나는 새, 이름 없는 들풀까지 모두 가람 아닌 것이 없음을 말이다.

 

<절터, 그 아름다운 만행/ 이지누>의 추천의 글 중에서 p5

 

 

 

성주사지....

그 이름과 함께 내 마음에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물밑에서 홀연 수면위로 떠오른다.

그래,초등학교 5,6학년쯤 난 엄마 아빠와 함께 그곳에 놀러간 적이 있었지...

사진을 보면 1975년 7월이라고 써 있다.

 

그렇게 난 아주 오래전의 사진을 꺼내들고 우리 큰 딸과 함께 이번 봄나들이로 성주사지를 향해 다녀오게 되었다.

 

 

 

 

 

1975년 7월의 어느날에...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난 이 사진을 기억하면서 저 뒤의 배경이 오층석탑이었다고 지금까지 확실하게 믿고 있었으니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서 있던 곳은 오층석탑이 아닌 성주사를 창설한 낭혜화상의 기념비였던 것이다.

 

늦둥이였던 나,

나를 이곳에 남겨두고 두 분은 모두 오래전에 다른 세상으로 가시었다.

그래서 저 시절은 내겐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그러나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그리운 한 때이다.

 

 

 

 

 

 

 

 

 

 

 

 

오층석탑 앞에서...

 

 

 

 

 

 

 

 

 

오층 석탑 뒤에 삼층 석탑 세 개가 나란히 있고

왼쪽 끝에 낭혜화상비가 서 있다.

 

 

 

 

 

 

 

 

 

어렸을 때 보았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

 

 

 

 

 

 

 

 

 

36년의 세월을 건너 어렸을 때 찍었던 그 똑같은 장소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이렇게 쓴다.

 

' 2011년 4월의 어느날에...'

 

 

 

 

 

 

 

 

 

 

이지누는 그가 쓴 '관독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스러져간 것들의 존재에 대한 흔적은 좀더 속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키고 사유는 또다른 방법과 창작을 낳는 법이다.

그렇게 인류의 아름다움은 이어져 왔고 인간에게 있어 그 기능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고 위대하다.'고.

 

스러져간 것들의 존재는 지금 나에게 무엇을 전해주고 있을까.

바로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귀 기울이며 들어야 하는 말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빈 터에서 우린 더 깊은 삶의 진실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그 빈자리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사무치게 지금 내가 다시 느끼고 있듯이....

 

 

2011.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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