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깨닫는 것은 모든 살아있는 생물에는 자생의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 자생의 능력이란 것은 생각해보면 참으로 위대하여 우리가 기적이라 일컫는 것도 사실은
이 자생의 힘에 의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린 그 자생력을 믿고 기다려주는 여유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물을 키울 때에도 내가 관여할 수 있는 것은 적당한 관심과 정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에도 자생의 힘이 있다는 것을 믿어주는 마음인 것이다.
그런데 사랑이 지나치다보면 하나에서 열까지 그 모든 것을 내 손으로 채워줘야만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저 스스로 일어날 수 있는 힘, 스스로 자기를 보호하고 홀로 일어서려는 힘을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무시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내 소관이 아닌 것에 대해 인정하는 일...
바라봐주고 기다려주는 일...그것이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아닐런지.
오늘 아침 난 꽃들이 조금이라도 햇볕을 받게 하고픈 욕심에 화분들을 베란다 창틀에 올려놓다가 그만
손의 힘의 균형을 잃는 바람에 바닦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그때문에 아래에 놓여있던 팔손이의 이제 막 올라오는 새순이 무참히 꺾여버리고 칼란디바의 예쁜 꽃대 두 개가
잘려나가고 말았다.
내가 너무 극성이었나 싶기도 하면서 마음이 계속 언짢다.
그냥 그 자리에서도 충분했을 것을...
부족한 것이 있었대도 스스로 적응하며 잘 자랄 수 있었을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생할 수 있는 공간을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는 관심의 시선을 거두고 모른 척 무심하게 철저히 방치해줘야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자식에 대해 기다려주지 못하는 것은 한번 길을 잘 못가면 그것을 되돌리기엔 오랜 시간과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한다는 것을 경험상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면 인생은 짧지만 그러면서도 길다.
이 길다라는 의미는 조금 돌아가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을만큼의 시간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조금 더 멀리 돌아가면 어떠랴.
인생에 빨리 출발한다고 해서 끝까지 빨리가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화초를 바라보면서 요즘 내가 막내에 대해 너무 간섭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아이를 믿어주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아이가 부모로부터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희덕의 '고통에게'라는 시의 한 구절이 종일 곁을 맴돌면서 내가 화초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화초들이 날 키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내가 그만큼 자란 탓일 것이다.
'그러나 꽃보다도 적게 산 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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