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시력이 급격히 안좋아지더니 밤에 운전하는 것조차 내키지 않게 되었다.
예전엔 차가 막히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한밤중에 장거리 운전을 하곤 했던 나였는데...
그런데 오늘부터 - 참 신기한 것이 정말 오늘부터- 모니터의 글들이 두개로 겹쳐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눈에 뭐가 끼었나 싶어서 아무리 손으로 눈을 부벼도 마찬가지였다.
'아, 눈이 안 좋아진 거구나...'
안경이 두 개나 있지만 아마 지금 시력과는 맞지 않을 것 같다.
기분이 참 묘하다.
마음은 그대로인데 몸이 내 나이를 새삼 일깨워주니...
작년부터 아프기 시작한 손가락 관절이 다시 심해져서 얼마전부터 정형외과에 치료를 받으러 다니고 있었는데
엊그제는 작년에 신었던, 그리 높지 않은 힐을 신고 외출했다가 발가락 관절이 아파서 고생했다.
찜질을 해주고 맛사지를 해주고 걷는 것도 삼가하고서야 이틀이 지나 겨우 나아졌다.
새 신발도 아니고 몇년을 아무런 불편없이 신어왔던 신발인데도 올해부터 내 몸이 거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 나이 마흔 여덟...
올 봄부터는 잔병치레를 참 자주 한다.
감기도 자주 앓고 조금만 무리하면 몸살에 장염이 함께 오곤 한다.
어제 새벽에도 급성장염에 열이 나서 고생했는데 오늘까지 병원에 다니고 있다.
화분 몇개만 들고 다니는 날이면 여지없이 찾아오는 몸살,
화초를 키우는 일도 내겐 무리가 되는 건가 싶어 조금 서글퍼지기도 한다.
예전 엄마가 사람은 서서히 늙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해 갑자기 늙는거라고 하시던 그 말씀이 생각이 난다.
올 해가 바로 엄마가 말한 그 한꺼번에 늙는다는 그런 해인가 싶기도 하고...
사람이 늙는다는 것은 몸을 통해 실감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던 일이 어느날 부턴가 내 힘으로 되지 않게 되는 일,
몸의 어느 한 부분의 불편함을 자꾸만 의식하게 되는 일,
그래서 뭔가의 도움을 받거나 보조를 받아야 되는 일...
하니 앞으로의 나의 삶은 훨씬 느리게 더디게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기다려지는 기분이다.
인생에 여러 삶이 단락처럼 나뉘어져 있다면 지금까지와는 또다른 미지의 삶을 향해 문을 열고 있는 기분이랄까...
근사하게 여유있게, 나의 의지대로, 내가 주체가 되어 앞으로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욕구와 더불어
설레이기조차 하는 이 마음은 뭐라 설명할 수 있을까?
결코 초라하게 나이들지 않을 거라는 이 다짐은 다른 말로 전쟁터에 나가는 전사와 같은 '각오'라고 해야 하나...
'글서랍'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의 소명이 끝난 기분 (0) | 2011.09.26 |
---|---|
바다가 그립다 (0) | 2011.08.21 |
자생의 능력 (0) | 2011.04.25 |
조금은 자랐구나, 너.... (0) | 2011.04.12 |
나의 애송시 (산 / 정희성) (0) | 2011.03.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