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잘 가라
도종환
그대여 흘러흘러 부디 잘 가라
소리없이 그러나 오래오래 흐르는 강물을 따라
그댈 보내며
이제는 그대가 내 곁에서가 아니라
그대 자리에 있을 때 더욱 아름답다는 걸 안다
어둠 속에서 키 큰 나무들이 그림자를 물에 누이고
나도 내 그림자를 물에 담가 흔들며
가늠할 수 없는 하늘 너머 불타며 사라지는
별들의 긴 눈물
잠깐씩 강물 위에 떳다가 사라지는 동안
밤도 가장 깊은 시간을 넘어서고
밤하늘보다 더 짙게 가라앉는 고요가 내게 내린다
이승에서 갖는 그대와 나의 이 거리 좁혀질 수 없어
그대가 살아 움직이고 미소짓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는
그대의 자리로 그대를 보내며
나 혼자 뼈아프게 깊어가는 이 고요한 강물 곁에서
적막하게 불러보는 그대
잘 가라
언제부턴가 난 '안녕'이라는 말을 혼잣말로 자주 한다.
인연이 다 했다는 것을 느낄 때, 더 이상 내 곁이 그사람에게 행복이 될 수 없을 때
나는 그때마다 속으로 안녕, 이라고 말한다.
점점 나로부터 분리되어가는 아이들에게도 서운한 마음이 들 때면
안녕! 이라고 되뇌이며 나의 마음을 조금씩 뒤로 옮겨간다.
그때마다 바늘로 콕콕 찌르듯 가슴이 아프지만 통과의례처럼 견뎌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안다.
사랑은 곁에 있을 때와 보내줘야 할 때를 아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물이 여울목에서 잠시 물결치다가 다시 자기 길을 재촉하여 흘러가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인연도 그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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