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사람
곽효환
때론 사랑이 시들해질 때가 있지
달력 그림 같은 창밖 풍경들도 이내 무료해지듯
경춘선 기차 객실에 나란히 앉아 재잘거리다
넓은 어깨에 고개를 묻고 잠이 든 그 설렘도
덕수궁 돌담길 따라 걷던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떨림도
북촌마을 막다른 골목 가슴 터질듯 두근거리던 입맞춤도
그냥 지겨워질 때가 있지
그래서 보낸 사람이 있지
세월이 흘러 홀로 지나온 길을 남몰래 돌아보지
날은 어둡고 텅 빈 하늘 아래 드문드문 가로등불
오래된 성당 앞 가로수 길에 찬바람 불고
낙엽과 함께 뒹구는 당신 이름, 당신과의 날들
빛바랜 누런 털, 눈물 그렁그렁한 선한 눈망울
영화 속 늙은 소 같은 옛날 사람
시들하고 지겨웠던, 휴식이고 위로였던 그 이름
늘 내 안에 있는 당신
이제 눈물을 훔치며 무릎을 내미네
두근거림은 없어도 이런 것도 사랑이라고
*<지도에 없는 집> 문학과지성사, 2010
진정한 사랑은 늘 곁에 있어주는 거라고, 언제부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한결같이 한곳에서 지켜봐주는 사람,
그런 시선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되어주는 사람,
그래서 내가 좀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람...
열정이나 설레임은 없어도
마음이 먼곳을 헤매이다 지쳐 제 자리로 돌아올 때면
멀리서 나를 위해 밝혀놓은 등불 같은 사람,
아, 저 사람 저기에 있었지 하고 다시 용기내게 하는 사람,
그런 옛날 사람을 이제 나는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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